숫자 놀음

2003.05.10 18:04

조옥동 조회 수:450 추천:43

숫자 놀음
- 조만연 (회계사) -

아내의 계산법은 정답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내가 식사중에 간혹 음식을 흘릴 때에는 "맨날 흘린다"고 아예 상습범처럼 부풀려 말하고 자신이 흘릴 것 같으면 "어쩌다 흘렸다"며 모처럼 생긴 실수로 축소해 버린다. 어림 잡아도 나에 대한 계산은 실제보다 족히 10배, 자신에 대한 것은 10분지1 정도 줄이는 것 같다. 이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들이 아내에게 당하는 덤터기로 그런 과장은 이제 관심과 애정의 표현방법으로 여기게끔 되었지만 이와같이 동일한 숫자라도 입장과 주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서로가 맞지않는 계산의 걸작은 도박으로서 부자간에 할지라도 딴 돈과 잃은 돈이 늘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 차이가 개인적인 문제에서 생기는 경우는 당사자들의 일로 국한되기 때문에 그래도 나은 편이다. 만약 중대한 국가정책이 잘못된 숫자를 근거로 시행된다면 국민의 혈세인 국가예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옴은 물론 국민정서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실제로 자유당시절 모 농림부장관이 산하기관의 엉터리 통계를 가지고 미곡 비축량에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 치다가 쌀수급에 구멍이 생겨 부랴부랴 쌀을 수입해야 하는 긴급사태로 까지 발전하였다.

며칠전 본국 일간지에서 비슷한 기사를 읽고 한국정부는 어째서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늘 그모양 그꼴인가 혼자서 탄식한 일이 있다. 불과 몇년 전 교사들의 숫자가 정년년령의 인하로 공급과잉 상태라고 해서 수천억의 국고를 써가며 많은 교사들을 명퇴라는 이름으로 물러나게 하였는데 이제는 태부족한 교사를 메우기 위하여 퇴직한 교사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바람에 복직한 교사들은 월급과 퇴직금에서 나오는 투자수익으로 매월 3백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교사들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불필요하게 지출된 국고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된 셈이다. 한국경제에 신화를 창조했다던 대우그룹도 실상을 들여다 보니 천문학적 부채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신기루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회사의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재무제표는 우리같은 회계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감쪽같이 꾸밀 수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최근 한국의 유수한 회계법인과 공인회계사들이 무더기 업무정지와 징계를 당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투자가들이 그런 숫자를 믿고서 돈을 맡기고 주식을 사들인다는 것이 매우 위험천만한 일임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숫자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카메리온과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숫자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고안해 낸 발명품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신뢰할 수있는 성질의 도구이다. 미국사람들이 풋볼이나 농구, 야구등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스포츠들이 기록운동이라는 점 때문이다. 기록운동은 숫자로 정해진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경기를 하게되며 그 승패는 개개인 선수들의 기록을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가려진다. 실용적인 미국사람들은 합리적인 운동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합리적인 것은 과학적인 것이며 과학적인 것은 수리적인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이민왔을 때 엉성한 치안제도와 물컹하게 보이는 미국사람들 속에서 한 밑천 잡을 것 같았던 생각이 이곳에 오래 살수록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나를 차츰 깨닭게 되는 것은 결국 미국사람들의 생활이 철저히 숫자적인 사고, 에 바탕을 두고있기 때문이다. 얼렁뚱당 적당히 처리하는데 익숙한 한국사람들이 처음에는 우세할 것 같지만 숫자개념으로 조여오는 미국사람에게 결국은 밀리게 된다.

인간은 숫자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산다는 것 자체가 숫자놀음이다. 사람은 한평생 숫자의 장단에 울고 웃거나 기뻐하고 서러워 하며
살아간다. 나이를 헤아리는 생년월일, 성적, 은행잔고, 신기록의 경신등 세상의 모든 일은 많고 적은 것, 높고 낮은 것, 길고 짧은 것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숫자로 표시되며 숫자에 의하여 우열과 성패가 결정된다. 사람이 숫자에 연연하면서도 한편 공포심(triskaidekaphobia)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숫자는 스스로 생각하거나 변형하지 못하며 이를 계산하고 분석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환언하면 세상사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숫자놀음에서 자유로워 질 수있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압박하고 있는 수많은 숫자놀음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삶의 참맛을 볼 수있으며 보다 풍요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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