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화학방정식

2003.05.13 18:41

조옥동 조회 수:482 추천:54

조옥동(시인)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난다. 내가 자란 시골은 읍내에서도 30리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학교에 가려면 크고 작은 동래를 몇 개 지나고 고개도 넘어 족히 오리 길은 걸어야 했다. 동래를 지날 때마다 친구가 늘어나 먼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누며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들  중에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다. 나보다 한 학년이 위인 친구로 오른 손이 다른 쪽 손보다 작고 팔도 자라지 않아 책가방 대신 책보에 싸서 허리춤에 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소아마비를 앓았던 지체부자유자였는데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없고 항상 싹싹한 마음씨의 따뜻한 친구였다. 어느 날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처음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하였다. 왜 하느님은 이 친구같이 좋은 사람을 불구가 되게 하고 또 아버지를 일찍 잃어버려 다른 친구들보다 몇 배나 슬프게 만드는가 하고 원망하였다. 어린 생각에 좋은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에게 보다 좋은 일이 많게 하셔야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제법 심각한 의문을 가지면서 처음으로 내 사색의 추를 달아 늘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는 나로 하여금 또 다시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는 일들이 내 주위에서 계속 발생하였다.  나에게는 본받아야 할 신앙의 대 선배 몇 분이 계시다. 그 분들과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진정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다. 아는 것,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항상 겸손하였고 남이 모르게 베푸는 사랑은 열매를 맺은 후에야 저절로 알려져 훈훈한 이야기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분들에게 차례로 불행히 닥쳐왔다.  ㅈ권사님은 너무 기력이 쇠퇴하여 노인아파트에서 양로병원으로 거처를 아주 옮기셨고, ㅂ권사님은 교통사고로 거의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뼈와 온 몸이 상하여 사경을 헤매는 어려움을 당하셨다. ㅇ권사님은 시력을 잃고 몇 번이나 거듭되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 시술을 받고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도움이 없이는 거동이 몹시 불편하시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전쟁과 피난살이 그리고 이민생활등 고난과 함께 숱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믿음으로 평생을 아름답고 신실하게 사신 이 분들에게 이제 노년이 되어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허락지 않으시고 너무도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당해내지 못하는 고난은 주시지 않는다고 했던가.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고통 속에서 더욱 하느님을 간절히 붙잡고 그 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참 믿음을 또 한번 배우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고난은 벌이 아님을 그 분들은 증언한다. 욥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읽었지만  현재 내 앞에서 고통가운데 누워있으면서도 이웃과 형제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이 분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겪지 않고는 남의 고통을 진정 알지 못한다. 깊은 병을 앓고 나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듯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고통의 터널을 지나지 않고는 성숙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성숙하지 못하여 고통 속에서도 진정한 고통을 자각하지 못하고 휩쓸려 살고 있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고 다른 방법으로 위안을 찾는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신체일부가 썩어 들어 상한 곳에 다른 이물질이 찾아 들어도 이를 모른다.  아픔을 자각하지 못하는 아픔은 슬픔이다.
화학방정식에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다. 화학반응을 일으켜 원래의 물질이 전혀 다른 새 물질로 변하여도 반응전과 반응후의 전체의 질량은 변함없이 똑 같다는 법칙이다. 나는 인생에도 이 법칙이 성립한다고 믿는다. 고통의 무게가 클수록 이를 극복한 기쁨과 행복의 무게도 크다.  비록 행복이나 기쁨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창조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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