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의 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2005.01.12 20:20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764 추천:56

2003년 8월 30일 토 주앙일보<조옥동의 시와 함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1939년 서울 출생 >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이 있는 공처럼. 그런데 너무 서둘러 낙하하는 생명들이 요사이 부쩍 늘고 있음은 슬프기에 앞서 훨씬 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나면서부터 "죽기를 살기 시작하는 겁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모난 돌이 세월의 징을 맞아 이리저리 둥굴러 부서지면 모래가 되듯 우리의 생명도 흙에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면 한 점을 찍고 마는데. 없는 자는 너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있는 자는 부가 오히려 짐이 되어 또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당치 못하는 스스로의 모멸 때문에 어린 학생이, 가장이나 기업체의 대표가 떨어져 쓸쓸히 쓰러져가고 있다.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다시 뛰어 오르지 못하고. 누가 바람 빠진 공 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가?
살아봐야지! 콩당콩당 터질 듯 뛰는 가슴을 안고 떨어져도 공처럼 튀어 올라 살고 싶은 맹세 수없이 안 해본 사람 누가 있나. 공같이 둥근 것이 세상 만물의 표준형인양 해와 달과 별, 순간의 이슬방울도 나무도 잎새도, 꽃도 씨앗도 알(卵)도 생명을 지닌 것 치고 둥글지 않은 것 없다. 동식물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세포의 모양도 둥글고, 우리의 삶 자체도 둥글고 둥글다. 둥글다는 의미는 멈춤이 없다는 말과 같다. 공의 표면에 우리는 아무 것도 정지시킬 수 없다. 공은 항상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 공의 이런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공이라면 어느 것이나 좋아하는가 보다. 계속 튀어 오르기 위해서는 울퉁불퉁한 표면이 아니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장해물이 없는 매끄러운 표면이 필요하다. 순리대로 사는 세상에서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멈춤이 없는 최선의 삶을 희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풋풋하다. 머리에 기름기가 없는 시인의 수수한 모습이 나는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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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연세대 국문과 교수이며 1965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제1회 미당문학상등을 수상했고,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시집에 《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갈증이며 샘물인》등이 있고 시론집 《숨과 꿈》,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와 네루다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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