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의 시 읽기      조옥동

  박남희 시집 「이불 속의 쥐」
  
                                                
天均 저울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저울을 가지고 있다
어디론가 기우뚱거리는 것들의 무게를 재는 저울
서로 다른 무게와 무게 사이에 끼어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고 피 흐르게 하는 저울

숨 가쁜 생의 오르가즘을 느끼듯
거친 소리를 내며 급박하게 흘러가던 계곡물이
바다에 이르러서야 평온해지는 것은
물이 제 몸에 저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에 뜨는 달도
우주가 제 저울추를
빛과 어둠 사이에 매달아놓은 것이다
나는 저울추의 무게를 느끼며
밤하늘이 쏟아내는
무수한 별똥별의 방향을 읽는다

밤하늘의 찬란한 아픔과 무게로 반짝이던
별똥별이 쏟아져 내린 허방 쪽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잠시 기우뚱거린다
그럴 때면 내 몸 속의 해와 달, 별들도
天均을 잃고 불안해진다

나는 종종 세상을 바라볼 때
내 몸의 저울을 느낀다
세상을 향해 자꾸 기울어지려는 나를
기울어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저울,

흐린 날, 우리네 어머니
신경통 저울의 주인이 어머니가 아니듯이
내 몸 속 저울의 주인도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내 몸은 늘 불안하다      

♤ 현대는 마이크로 시대에서 나노시대로 진입했다. 실제로 나노의 백만 분의 일까지도 측정하는 일은 흔하다. 하나의 먼지도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 공기도 무게가 있다. 이들의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물리적 해답을 줄 수 있는 과학이 있지만 시인이 희구하는 모범 답은 아닌 듯 하다. 우주는 물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고여서 만드는 형이상학적인 세계, 영혼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저울, 모든 것들의 무게중심이 합일하여 평형의 완성을 이루는 저울은 누가 만드는 것 일가?

무게중심을 가운데 두고 저울 양측 팔에 놓인 무게가 동일하여 평형을 이루는 순간 저울은 파르르 전율을 일으킨다. 생의 오르가즘을 느끼듯. 급한 계곡 물이 바다에 이르러서야 평온해짐은 평형을 이루려는 天均의 성품 때문이라고, 허나 바다는 쉼 없이 파도를 일으킨다. 온전한 평형이 존재할 수 있는지, 세상의 저울보다 비교될 수 없이 예민하고 감각적인 시인의 저울은 그가 간직한 해와 별 모든 우주까지 天均을 잃을 가 불안함을 고백한다.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고 피 흐르게 하는 저울, 天均에 이르는 일은 시인의 꿈이요 이상이며 우주의 본래 모습일 게다. 신경통 저울의 주인이 어머니가 아니 듯 저울의 본래 주인을 탐색해야 한다. 그의 저울 중심은 하늘 곧 우주중심에 닿아 있을 지 모른다. 온전한 것의 모습이 원이라면 그리고 사랑과 미움을 비롯한 생의 모든 요소와 형상이 이 원의 둘레를 이루고 있다면 그 무게중심과 등거리에 존재하므로 天均이 아닐는지.

시는 살과 뼈가 없어도 저울을 가지고 있다. 시는 시인의 내면 속에 있고 시인은 시가 그 속에 있어 시의 무게중심은 시인의 무게중심이 되고 시의 무게는 시인의 저울 눈금 위에서 빛이 나고 있지 않은가.  

빛과 어둠사이에 추를 매단 우주는 음과 양의 영원한 대립을 두 팔의 양측에 놓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며 반사하는 거울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것엔 허방이 있어 쉬지 않고 기우뚱거림의 생은 어느 누구에게나 또한 어느 것 하나에도 예외일 수 없기에 시인과 우리 모두의 불안은 天均 저울을 얻기 위한 영원한 모습이며 순수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닐까.

박남희 시인은 카르마타 신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 가운데 일년에 한 번 나타날지 확실치도 않은 흰쥐를 경배하기 위해 그의 머리카락까지도 잘라 바치려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시가 있고 시는 쥐로 환생한 신의 자녀들처럼 귀하고 그의 저울 무게중심의 한 측을 잡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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