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표

2007.05.28 08:10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361 추천:49

                                 천사표
                                                      

   차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한강육교를 건너 신용산에 가까이 왔을 때부터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너무 먼 거리를 걸어 왔던 것이다.   적게 잡아도 족히 십여리는 걸었고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온 거리보다 두배는 더 걸어가야만 했다.   나는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전차정류장에서 멈춰 섰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호흡은 숨이 차 고르지 못하였다.   뱃속에서도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정류장 이곳 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니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나와 같이 교복 차림의 학생들도 몇명 눈에 띄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바보 같은 내 자신을 탓하며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오후 흑석동 아저씨 댁에 심부름을 갔을 때만 해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차비가 있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전차표 한 장만 있는데도 아들이 돈에 쪼들린다면 마음이 상하실 것 같아 "그럼요. 아직 회수권이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 마세요." 씩씩하게 대답하고 떠났던 것이다.   그렇게 말한 구석에는 한편 믿는 데가 있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일가친척, 특히 학생이 자기 집에 왔다갈 때는 의례이 차비를 손에 쥐어 보내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혹시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적당히 구실을 붙혀 차비를 융통하면 되리라 계산하고 있었다.   나의 계획이 어긋난 것은 저녘식사를 준비하시던 당숙모가 끓은 물에 화상을 입는데서 시작되었다.   당숙모는 동네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돌아오긴 했으나 이미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침울하여 더 이상 머물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나는 볼일을 핑계 대고 빨리 가봐야 된다며 일어났으나 그런 상황에서 차마 아저씨에게 손까지 내밀 계제가 못되어 몇번을 망서린 끝에 그냥 떠나고 말았다.   처음 길을 나설 때만 해도 "까짓껏 운동 삼아 집까지 한번 걸어보자" 다짐했지만 흑석동에서 남산동 우리집까지 걸어가기에는 무리한 도전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막을 내리고 2년이 가까워 오는 1955년 봄.  서울의 대중교통수단은 전차가 전부였다.   시내 주요 도로에는 전쟁 전부터 있던 일본산 전차와 구호물자로 들여온 몸집이 통통한 미국제 전차가 섞여 운행되고 있었다.   나는 어둠속에서 사람들 사이를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며 전차표를 팔고있는 두세명의 아주머니를 발견하자 순간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그들은 시간이 이르거나 늦은 때에는 매표소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원전에 한두푼


얹혀서 되파는 아주머니들이었다.   나는 그중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에는 벌써 전차표를 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민망스러워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어, 사실은 표 살 돈이 떨어졌는데요. 꾸어 주시면 내일 갚아드릴---." 더듬거리며 말끝을 얼버무리니 아주머니는 힐끗 나를 쳐다보며 "몇장 필요한데?" 대수롭지 않은 듯 물어왔다.   나는 이에 힘을 얻어 "한장이면 돼요." 재빨라 대답하자 "혹시 모르니 한 장 더 주마.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집에 가거라" 말하며 선선히 두장을 떼어주었다.   나는 전차표를 받아들고 "정말 고맙습니다.  내일 꼭 찾아 뵙고 갚아 드릴께요." 꾸뻑 절하고 보니 어느새 아주머니는  손님을 찾아 다른 곳으로 갔는지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저녘 비슷한 시간에 나는 전차정류장으로 그 아주머니를 찾아갔으나 어쩐 일인지 만날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가려는데 공교롭게도 급한 일이 생겨 다음 날로 미루었다.   그 날만은 꼭 가려고 별렀으나 또 다른 일이 생겨 훗날로 미루고 그렇게 차일피일 하다가 결국 찾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그때는 누구나 어렵고 풍족치 못한 환경 속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몇 푼 남기겠다고 전차표를 팔고있는 그 아주머니의 형편은 오죽했을까.   그런 아주머니가 일면식도 없는 어린 학생에게 주저 없이 전차표를 준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미스터리였다.   나는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전차표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심한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준 것은 단지 집으로 가는 전차표가 아니라 내 생애 전과정에서 가야할 길을 심어 준 천사표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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