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로 가는 길

2008.07.24 20:08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371 추천:36

여리고로 가는 길
              
                                                    조옥동

겨울의 단절된 시간들이 갖가지 물감으로 풀리고 침묵하던 마른 입술이 열리며 수많은 언어들이 생동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요즈음 우리 집 뒤뜰의 모습이다.  가꾸고 있는 50여종의 선인장 중에 가시를 갖지 않은 종류는 몇이 안 되는데 꺼칠했던 가시들이 윤기가 나고 공작선인장과 게발선인장은 마디마다 벌써 꽃망울을 조랑조랑 달고 있다.  수국이 움싹 자랐고 백합이 줄기마다 살쪄있는 모습이 청자의 봉긋한 자태를 보는 듯 하고 뒤에 숨어서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철쭉들이 매무새를 바로잡는데 성급한 거미들의 활동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햇살이 따사롭게 중천을 비끼면 풀장에 물 흐르는 소리가 맑고 낭랑해져 거실 창가까지 또렷하게 들려온다.  바람이 한번 울안의 공기를 살랑 이고 지나가면 한창 피기 시작한 오렌지나무의 하얀 꽃향기가 뜰 안에 그윽하게 퍼지고 코랄트리의 빨그레한 꽃송이가 애기 주먹을 꼬옥 쥐고 있다.  봄의 전령사로 흰 눈꽃송이를 이웃 온 길목에 뿌렸던 돌배나무는 이제는 잔잔한 그늘을 드리우고 그 밑엔 부지런한 개미들의 길다란 행렬이 시작되었다.  
  
이젠 너무도 활발한 봄의 약동 때문에 눈으로, 코로, 귀로, 살갗으로 부딪치며 생명의 환희를 내어 밀칠 수가 없다.  정체되었던 활동이 되 살아나고 그 반경이 넓어지며 멈추었던 여행길을 다시 출발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근심과 아픔과 추위로 짓 눌렸던 우리 인생의 계절에도 봄이 찾아온다면 눅눅한 자리를 걷어 버리고  일어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용기와 준비가 필요하다.  고난과 고통이 불행이라고만 결정짓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만의 운명이라고 밀어붙일 수 있는가.  그러한 사람들 속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기쁠 때엔 감사하지 않고/ 슬플 때엔 희망하지 않고/편리한 “운명”과 악수하며/적당히 살아 왔습니다.  이 글은 새해를 맞아 어느 시인이 새 힘을 바라는 서원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의 일부이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새 출발의 배낭을 들어올리기 전에 한 번씩 묵상해 볼 말이다.   누구나 도달하기를 희망하는 목적지가 있는데 계절이 좋다고 꽃향기에만 취해 머무적거리거나 시원한 그늘아래 어찌 쉬고만 있겠는지.  자신의 힘든 여건만을 핑계 삼아 주저앉아만 있을 수 없는 편이 좀 더 현명한 선택임을 안다면  쉽게 여정을 포기하지 말고 먼 길 여리고를 향해 떠나야 하겠다.

  주위 환경이 쾌적하고 주요 동서무역로를 끼고 있는 요단강 서쪽 예루살렘의 동북동쪽에 자리 잡은 도시, 여리고지방은 이스라엘 정탐꾼이 기생 라합을 만난 곳이었고,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고, 전략적 위치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정복지로 삼았던 평지다.  비옥한 지역으로 알려진 성경의 여리고는 가나안, 이스라엘 시대와 헤롯 성읍의 시대에 감동적인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예수님이 택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을 무대로 삼고 있다.  고고학에서 찾아봐도 이 성은 화려한 면모를 볼 수 있어 그때 사람들이 많이 가고 싶어 한 목적지로 생각된다.  사람마다 여리고 곧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네 사람의 유형 중 하나의 유형이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남을 돕는 자가 되거나 강도와 같이 상대방을 괴롭히고 피해를 입히는 자가 되거나 직접 피해를 당하는 자가 될 수도 있고, 고통당한 이웃을 피하여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거짓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이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다.  나는 어느 형의 사람일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길에서 많은 동행자들을 만나고 또 헤어질 때 강도를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수난의 때에 어떤 동행인을 만나기를 바랄 것인지. 대답은 분명하기에 평소 고난을 당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 주는 심성을 키우며,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기를 연습한다면  따뜻하고 보다 더 살기 좋은 희망의 땅, 여리고로 향해 가는 우리들 삶의 여정은 덜 고달플 것 같다.
출생을 시작으로 여리고행은 계속 이어지고 죽음이란 종착역에 내릴 때까지 선한 사마리아인을 여럿 만나기를 소원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사마리아인이 되는 여행길을 원한다면 모두 안전한 여행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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