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집속의 시 읽기
이승부 시집 “꽃가루가 흩날리어”

                                              조옥동 감상


꽃가루가 흩날리어

                                        이승부

종묘 담장 밑엔
껍데기만 남은 내 할아버지의 손바닥이 있다
꽃가루가 흩날리어
종로통이 온통 사금파리로 뒤덮여도
그날의 선명한 지문이 지워지지 않고 되살아나는 까닭은
옛 우물길의 두레박 때문이라네
꽃가루기 흩날리어
생각 없이 구우국구우국 기집 죽고 자식 죽고 …
유년의 할머니마저 찬란한 햇살 속으로 사라져 갈 때
꽃가루가 흩날리어 비들기가 날아오르고
눈을 뜨면 울컥울컥 내장을 토하는 비포장 길,
앞산 솔밭이 눈에 들어오고
꽃가루가 흩날리어
우마차 타고 고운사 가는 내 아지매 이마 위로
꽃가루가 흩날리어
갑자기 종묘 담장이 눈앞에 일어서고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우리 삶의 날에 꽃가루가 흩날리는 날이 몇 날이나 되겠는가? 따뜻한 햇볕을 쏘이며 피고 지는 꽃들은 수없이 많아도 우리의 눈에 그 고운 꽃들의 편린들이 마음 문을 열게 한 때는 사실 몇 번이나 되었을까?  연륜이 지긋해지고 육안과는 전혀 다른 시인의 눈이 점차 밝아지니 늘상 있었던 자연의 한 현상마저 마음속에 충만하게 밀물져 오는 감성을 이시인은 피할 수가 없다.  
굽이굽이 돌아 온 길목에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잊을 수 없다. 가족들의 기억은 우리 삶의 역사요 온 생을 사는 동안 양 날개 밑에 끼고 갈 블루 프린트이다. 시인은 꽃가루 흩날려 할아버지생각 또 꽃가루 흩날려 할머니 생각으로 유년의 기억까지 햇살 속으로 찬란하게 사라져 간다. 꽃가루 흩날리는 날이 시인을 감상에 빠뜨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제 꽃가루 흩날리는 날이 있기에 시인은 과거로 회귀한다. 다시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는 날 시인은 틀림없이 미래를 또 바라보고 있음이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는 과거의 소산이다.  과거의 기억과 자연현상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동선으로 모자이크하는 시인의 조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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