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와 고향----조옥동

2009.08.20 17:48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542 추천:73

      참외와 고향                    

                                                            조옥동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여름철, 이곳 L. A. 의 날씨는 기온이 체온보다 높은 날이 많다.  에어컨이 없이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날이 계속되고 있다.
습도가 낮아서 그늘 속에서는 그런 대로 견딜 만 하다가도 칠월부터 팔월에 접어들면 시원한 냉방장치가 잘된 실내에서도 얼음이 든 냉 음료수를 계속 마시게 되고
팥빙수 같은 계절의 특미를 즐긴다.  여름철엔 누구나 참외와 수박을 빼 놓고 지나칠 수는 없다.  혹 어떤 이는 이민초기에 고달픈 이민생활을 수박 먹는 맛으로 이겨낸다고 말 할 정도로 미국의 수박은 크기만 하지 않고 맛도 시원한 것이 일품이다.  동글동글하고 매끄럽고 샛노랗게 잘 익은 꿀맛 나는 참외를 저녁시간 TV앞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먹는 정경은 고향에서의 정다웠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참외와 수박이 매우 한국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산물이 많지만 참외는 한국의 고유한 특산물이고 한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고유의 맛을 지니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멕시코에서 큰 농장을 경영하며  L. A.를 비롯하여 미국 여러 지방에 각가지 농산물을 공급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가장 한국참외의 맛이 나는 꿀참외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결과 제 맛이 나는 참외를 성공적으로 재배하여 각 시장에 고향의 진한 맛을 공급하고 있다.        
  십여 년 전 만해도 참외는 이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한국식품의 하나였고 우리 한국 이민자들이 그리워하던 고국의 맛이었다.  잘 익은 참외는 겉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맵시가 있고, 속살은 씹히는 맛이 사근사근하여 질기지 않으며, 맛은 매우 달콤하면서도 혀끝만을 자극하지 않는 깊은 맛이 있고 속에는 수십 수백 개의 씨를 씨 주머니 안에 가지런히 맺고 있어 종자를 퍼뜨리기도 쉽다.  또한 소화와 흡수가 잘 될뿐더러 이뇨작용을 도와주고 당분과 섬유질이 많아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고 입맛이 없을 때 쉽게 섭취 할 수 있는 건강식품이다.  이러한 속성들이 우리 민족의 민족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면 나의 지나친 억지일까?

고향의 맛, 고향의 멋, 고향의 벗 그리고 고향산천, 수 천마일 멀리 타향에 사는 사람들, 우리 이민자에게는 떠나 온 연유야 무엇이든 고향이란 말만 하여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로 젖어 옴을 막을 수 없다.
단 내 물씬한 참외 한 쪽을 씹으면서 아련한 옛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참외서리, 수박서리의 악의 없던 장난이나 원두막 초롱불 아래서 듣던 무서운 옛날이야기들은 접어두고라도 겨울이면 썰매타기, 쥐불 놓기, 딱지치기, 연 날리기 등 친구들과 북적거리며 보낸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벽이 사방으로 막힌 PC방에 앉아 스크린 속의 유령인들 만을 상대로 펼쳐지는 속도게임에 도취된 현대의 어린 세대들에겐 체험하기 어려운 보배로운 경험들이다.

얼마 전 “고향의 봄”을 주제로 하는 글을 써야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서울이 고향인 한 분이 자기는 서울에서만 살고 성장하여 특별히 인상적인 글을 쓰기에는 소재들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내 고향 추억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재들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사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저곳으로 옮기어 살면서도 마음 속 깊이 묻어 둔 고향이 있다.  사진은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여도 고향의 기억은 바래이기는커녕 더욱 새로워 짐을 누구나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욱 아름답게만 채색되어 그리움은 더해가고 간절하다.  

미주로 이민 와서 자라는 우리 2세들의 고향은 어느 곳일까?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곳에 와서도 좋은 학교,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입시를 위주로 하는 교육에만 열성적으로 몰아 가는 경향이다.  여름방학이 지나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바다로 또는 미술관, 박물관을 찾으면서 아름답고 잊지 못할 기억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성장하여 이곳을 떠나 살더라도 그들에겐 이 곳 L. A. 가 그들의 고향으로 자리 잡고 그리워 다시 찾아 올 것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포근하고 정다운 것의 대명사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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