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마음

                                                조옥동

옆집의 바비큐 연기가 고기 익는 냄새와 어울려 낮은 담을 넘어 연휴의 맛을 풍긴다.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옆 집 아빠는 또 바비큐를 하나보다. 바른편 옆집에서도 즐거운 음악과 청춘 남녀들의 떠들썩한 얘기소리와 풀장의 물 넘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귀를 세우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웃집이 고적하다.  덩달아 올 해의 독립기념일 연휴는 괜히 울적하다.    
15년 전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이웃으로 처음인사를 했을 때 왼 쪽 집의 흑인 부부는 어린 남매를 하나씩 안고 드나들었고 다음 해 다시 아들을 낳아 2남 1녀가 되었다.  다른 옆집엔 예쁜 부인과 곱슬머리 영감이 조그만 강아지를 앞세우고 매일 저녁산책을 하고 있었고 가끔 건장한 아들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드나드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공휴일이나 여름엔 자주 딸네 어린 손주들이 놀러와 물놀이를 하느라 웃음소리가 담을 넘었고 이 부부는 금발머리 세쌍둥이 손녀들을 데리고 나와 신기한 보물을 자랑하듯 이름 하나 하나를 이웃들에 알려주곤 했다.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 세 자녀를 둔 세집이 이웃하고 살게 되었다. 우리 집 3남매도 모두 대학을 마치고 각자 직장을 따라 집을 떠나 있었지만 명절이나 휴가 때는 가족을 찾아 틀림없이 수천마일을 날라 왔다.  자녀를 둔 부모의 행복을 세집이 함께 나누며 나란히 다정하게 지냈다.

왼쪽 집 앞과 뒷뜰에 농구대가 설치되고 아빠와 아들이 열심히 골 넣는 연습을 시작했다. 키가 고무줄을 늘리 듯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들 둘을 이 부부는 매직 존슨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쯤 되는 선수를 만들겠단 꿈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바른쪽 옆집은 두 아들이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고난 후엔 강아지만 그 부부 옆에 변함없이 남게 되더니 집을 새로 페인트칠하고 창문과 출입문도 새로 달고 노부부는 신접살림을 차린 신혼처럼 즐거워했다. 우리도 파란 눈의 큰 사위를 맞으며 글로벌 가족이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한지가 몇 년이 안 되는데 다시 코 큰 막네 사위를 맞을 것 같다. 그동안 골목 안에는 새로운 이웃들이 들고 나며 변화가 좀 있었으나 우리 세집은 무난하게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늙고 성숙한 저들은 배우자를 만나 새둥지를 틀거나 또는 직장을 따라 독립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녀의 부모가 되었고 조금씩 부모를 이해하며 부모에게 배우고 받았던 사랑을 자녀에게 실습할 것이다. 놓으면 큰 일 날까 꼭 잡고 있던 부모의 손대신 자신들의 아이들 손을 붙잡느라 부모를 바라보던 시선조차 서서히 멀어져 간다. 이젠 저들의 마음까지 멀어져 갈 순서인가 보다.

뜰의 자목련 핏빛 꽃송이가 무너지듯 떨어지고 앵두꽃이 잠시 웃었다 지었다. 곱술 머리 영감이 새 잎 돋는 돌배나무 아래로 왠지 혼자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애처가인 그가 부인을 멀리 여행 보내고 비즈니스와 집을 홀로 지키는 가 했는데 어두운 표정의 가족들이 빈번히 드나들고 못 보던 친지들이 왕래를 했다. “아내가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고 마치 남의 입술을 열어 말하듯이 그의 입술이 자신의 얼굴에 붙어 있지 않은 듯 너무 담담했다. 2개월 후 우린 조그만 카드에 간단한 위로의 말로 한 이웃을 떠나보냈다.
생로병사, 생사화복이 차례로 바로 내 옆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바싹 실감케 하고 있다. 마치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대열 속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생여정의 순리를 그대로 받아드리는 데는 연습조차 필요치 않은 것을.
멀리 떠나간 새들의 둥지만을 지키며 변함없이 서 있는 해바라기, 그리움과 애모와 사랑을 가슴 저 밑바닥까지 꾹꾹 삼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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