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09/이 아침에/중앙일보    

뉴턴의 사과가 떨어진 가을

                                              조옥동(시인)
  
  일을 마치고 나오니 텅 비었던 넓은 파킹 장에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연구실로 쓰이는 건물 7동은 병원캠퍼스 맨 동쪽에 다른 건물들과는 뚝 떨어져 있어 주말이면 더 휘져 보이는 곳이다.

서로 다른 연구실에서 일하는 1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인종 분포는 다양하여 주중 내내 이 건물 안의 사람들만 보아도 세계를 만나는 셈이다. 오랫동안 이들을 이웃하고 지내다 보니 내 방식대로지만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뉜다. 개방 족은 시간만 허용되면 답답한 실험실을 빠져나가기를 좋아하고 밀폐 족은 쉴 시간에도 실험실에 남아 컴퓨터나 실험기구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같이 청명한 가을날, 주말인데도 연구실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밀폐족임에 틀림없다. 무엇이 이들을 한 결 같이 좁은 공간속으로 밀어 넣는지 알고 싶다. 일에 열심인 사람이 자기 일에 갇혀 지내는 것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사회적 상호 인간관계의 장애로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있는 현상과는 다르다. 자폐증 환자는 의사소통의 장애, 상상력의 장애로 대인관계를 형성치 못하는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 풀지 못하는 질병의 원인과 복잡한 자연현상의 원리는 캐어 들어 갈수록 닿지 못할 요원한 세계임을 접근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자기 사념 속에서 상상의 실체를 찾거나 상념의 깊은 우물 속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있을 수 있다.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여 남이 잘 알지 못하는 깊은 공간 속에 갇혀 때로는 밤과 낮 시간을 잊고 산다. 이 건물 속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뉴욕 월가의 소식보다는 실험 연구결과를 앞에 놓고 자신의 가설을 증명해 줄 데이터 숫자가 더 중요하다.
스스로 설정한 가설 속에서 진리를 찾아 이끌어 내고 증명하려는 탐구자의 열망 은 생명체의 신비를 캐는 일, 천문학자가 일생동안 우주 무한공간에서 새로운 별을 찾거나 궤도를 추적하는 일, 생명을 내놓고 우주비행선을 타는 일, 어둠속에서 현미경 아래 눈의 초점에 구멍이 뚫릴지라도 미시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일 등 다양하다.

천직으로 알고 자기 일에 갇혀 마음과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들 뿐이랴. 짧은 인생을 고차원의 세계로 승화시켜 삶을 변화시킨 인류의 대 선배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어느 곳에 왜 갇혀 있는지 이유를 아는 자는 때를 기다리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실 밖 주차장을 빠져 나오니 확 트인 눈앞이 가을로 가득 찼다. 하늘과 나무, 잔디와 건물, 도로 모두가 가을 속에 놓여있다. 아니, 온 세상이 가을 속에 갇혀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증명한 뉴턴도 가을 속에 갇혀 있었음에 틀림없다.
몇 시간 연구실에 갇혀 있던 나도 이제 다시 가을 속에 갇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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