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2009 중앙일보 '이 아침에'

          가을은 마음을 가지 치는 계절                        

                                                                                                                  조옥동(시인)

연구실 앞 잔디밭에 소나무 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마득하게 올려진 리프트를 타고 조경사가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모습이 보였다. 수 십 년씩 자란 소나무들이 건물 좌우에 있는데 한 쪽의 나무들은 이미 이발을 마친 듯 말끔하게 서서 가지가지 사이론 가을 하늘의 푸른 강물이 구비치고 있었다. 며칠 새 주위 나무들도 약속이나 하고 다이어트를 한 듯 가지치기로 갸름해 보였다.

단풍든 나뭇잎이 떨어질 무렵 잔가지를 꺾어 봐서 수액이 나오지 않을 때 조경사는 가지치기와 정지를 한다고 한다. 보통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벨트로 휘청거리는 나무에 몸을 묵고 가지 치는 모습은 쳐다만 봐도 아찔해서 겁이 났었다.

이젠 몇 층 건물보다 훨씬 높은 나무 끝까지도 안전하게 오를 수 있으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가라.”는 유머는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 같다. 사다리가 리프트나 크레인으로 발전했듯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려는 연구, 용기, 사명감, 열정 또한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나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원사 손끝에선 멀쩡한 가지조차 잘려나고 있다. 왜 가지치기는 필요 한가?

지난 한 해 만도 경제 불황 때문에 많은 직장인이 회사라는 나무에서 가지치기로 잘려 나갔다. 꿈에라도 가고픈 대학, 하버드가 재정난으로 373년의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이 된 드루 파우스트 총장은 장미 빛 플랜을 접고 일반 기업의 CEO와 다름없이 구조조정이란 가지치기를 감행하였다.

가지치기는 오직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시대는 각 개체가 건전하게 살아남아 미래를 약속 받기위해 조직이든 개인이든 피나는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가지치기는 뭐라 해도 마음의 가지치기일 것 같다.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비롯되므로 마음을 갈고 닦으라 한다. 예수님의 광야 40일 기도나 불자의 참선은 곧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본을 보여준 방법이리라. 살신성인, 자신을 온전히 잘라내고 마음의 뿌리에 희생이란 자양분으로 사랑을 키워 이웃을 살리기도 한다.

사는 동안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미움과 갈등 때로는 사랑과 연모의 마음까지도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 고향과 조국을 떠나 변두리 사람으로 전락한 이민자들은 생존의 새 뿌리를 내리는 동안 외로움이나 향수 같은 사치성 마음을 가지치기해야 하는 유랑민들이다.

마음이 우주라 한다. 우주전체인 우주마음이 되는 일, 마음의 가지들을 모두 자른 큰 마음을 품는 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빈 마음이 되는 일들은 슬픔과 아픔까지도 지니고 싶은 보통 사람에겐 너무도 힘든 일이다.

조용한 밤, 먼동이 트기까지 나는 모니터 앞에서 색다른 가지치기를 할 때가 있다. 보고 또 보며 쓸데없는 단어를, 토씨나 형용사 심지어 제목인 머리까지도 잘라내며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다듬는다.

시인이 되는 길은 고수의 조경사가 되는 것, 수없이 가지치기를 해서 하나의 시로, 작품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나의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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