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2009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인생이란 교향곡 소나타
                                                     조옥동 시인

남편을 따라 동창회에 갔었다. 동기생들 부부가 10명씩 앉는 테이블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 일 년, 한 분이 세상을 뜨고 부인을 잃은 분과 병중에 있는 분이 오지 않아 그들 자리가 비었다. 노령의 선배들은 빈자리를 채우려 몇 년차 동기들이 한 테이블을 만들기도 했다. 며칠 전 서울의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 왔다. 대학교 은사를 모신 연말 동창회 사진 몇 장이 붙어 와 하나씩 모습을 짚어보니 사라진 얼굴들이 있고, 이젠 은사님이나 제자들이 함께 늙어 가고 있었다.                              

모임에서 유머는 비빔밥에 참기름 같이 빼 놓을 수 없는 양념 역할을 한다. 분위기 만드는 데는 워낙 썰렁한 나도 뱃살이 아프도록 웃게 한 방담들을 한 번 써 보려 했으나 잘 생각나지 않는데, 반면 90세 가까운 대 선배의 아릿했던 인사말이 계속 명치끝을 건드린다. 그는 년 말이면 받는 카드 수 보다 보내는 카드 수에 마음 쓰는데, 몇 십장이 해마다 줄고 줄어 올해는 겨우 10여장 보냈다고 했다. 몇 년 전 부인을 잃은 외로움에 이젠 가까운 친구들마저 하나 둘 떠나 몇 명 남지 않았다며, 곁에 있을 때 서로 아끼고 잘 하라고. 사랑이나 우정을 진정으로 주고 싶어도 받아 줄 상대가 존재 하지 않을 때의 슬픔이나 후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렇다, 늙는다는 일은 세월과의 피할 수 없는 약속이다.                

고분자 화학등 기초과학의 발달은 생명공학으로 이어지고 현재 줄기세포 연구는 실생활과 의학에 희망을 주고 있다. 건물의 청사진 같은 개인의 DNA구조는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의 청사진이다. DNA 구조를 밝히고 유전자 지도를 만든 현대과학의 공헌은 눈부시다. 종신형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던 한 죄수는 거듭 DNA검사를 청원하여 결국 무죄가 입증 되고 35년 동안의 지옥생활에서 석방 되었고 현재까지 비슷하게 해결된 사건들도 많다.        

소설 속에서나 상상할 일들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며 생체수명을 120세까지 바라볼 만큼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완전 정복은 요원하다. 알츠하이머 같은 노인성 질환을 연구하는 노년의학과 줄기세포 연구가 풀어 갈 숙제들이 쌓여 있다.          

꿈을 가진 자는 삶을 변화시키고 이들이 있어 세상은 정지 않고 새로워진다. 새로운 DNA구조를 인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유전자 재결합 기술을 이용하여 정신과 육체적 건강은 물론 마음도 병들지 않게 따뜻함과 진실성을 생성하는 유전인자를 주사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한 날에 입학한 동기생일지라도 다니던 학교를 그리고 세상을 동시에 졸업할 수 없듯, 인생이란 교향곡 소나타는 모두 3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1악장이나 2악장에서 끝나는 인생도 있고 때로는 4악장까지 연주되는 인생도 있다. 악장마다 마디마다 템포도 다르다. 마지막 악장이 끝날 때 지휘봉을 잡은 컨덕터에게 쏟아지는 갈채를 연상하며 참 멋진 인생이 담긴 교향곡을 만들고 싶다.        

허욕과 분노, 미움과 낭패의 그림자는 끊어 버리고, 우리는 꿈꾸는 사람들, 손에 손을 잡고  새 아침 햇살 찬란한 들판으로 힘차게 밀고 나갈 2010년 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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