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을 함께 가는 사람들

                                                조옥동 시인

달력위에 박힌 날짜들은 단조로운 숫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상한 마력을 지닌 지휘봉처럼 일 년간 우리의 생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조율한다. 연말연시엔 끝과 시작이란 상반된 뜻이 긴장감을 몰아와 정신적 심리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준다.

미주동부는 폭설로 정전이 발생하고 교통이 마비되며 비행기가 이륙을 못해 승객들은 며칠 밤 공항 대합실에 갇히기도 한다. 한국의 태백 산간 오지 마을도 겨울 눈 속에 갇혀 인기척도 길도 끊기는 절대 고요 속에 고립되는 일을 본다. 이 같은 기후뿐만 아니라 어떤 상항이 발생해도 시간과 날짜는 흘러간다.
누가 무슨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의 여행이 곧 세월이고 기록하면 역사가 되었다. 12개월, 365일 새로 주어진 날마다 소망을 그려 넣으며 새해의 수레바퀴는 논리나 이론 또는 이념의 머리로 움직이기보다 상식과 진리를 존중하는 가슴으로 밀고 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고대 인도에선 시간의 개념을 찰나(1/75초)에서 1겁(劫)이란 단위로 나타 내 생로병사를 설명하려했다. 1겁은 사방이 15km되는 바위산을 100년에 한 번씩 하강하는 선녀들의 비단 옷자락에 스쳐 바위산이 닳아 없어지기까지 걸리는 길고 긴 시간이라 한다. 이는 인생을 고해(苦海)라 빗대어 표현 하 듯 고통의 길이 멀고도 길다는 것을 뜻하고, 인생이 눈 깜작 할 사이라는 말도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닌 것은 100년을 살다 간들 인생은 장구한 억겁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 같아 한 생애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리 멀고도 짧다.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옷깃 한 번 스치는 일조차 우연이 아닌 귀한 인연으로 해석함은 의미심장하다. 무의미한 만남 같아도 지나보면 그 만남 속에서 관계의 길은 연결 되고 세상은 넓혀졌다.        

연구실 건물에서 실험용 동물 사육장 사이엔 푸른 잔디밭이 펼쳐 있다. 생쥐를 이용하는  실험일, 연구실 스태프들과 걷기 운동을 할 겸 크로스컨트리 경주 하는 기분으로 왕복 1.5마일 거리를 가로 질러간다. 골프장 옆을 지나며 타이거 우즈 얘기도 하고 테니스 코트를 지날 땐 주말에 있었던 그들의 게임 경과로 웃고 떠들며 발을 옮긴다.
팜 트리를 달려 내려 온 다람쥐들이 먹이라도 얻을 가 갸웃대며 바짝 따라오면 옆의 닥터 유리는 먹이를 주는 시늉을 하고 간혹 땅콩을 가져다 뿌려주기도 한다. 나는 가장 나이가 많은 엄마? 스태프이고 저들은 30-40대 청장년으로 경주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언제나 나를 배려해 보폭을 나에게 맞춰 결국은 동시에 목적지에 다다른다.

따져 보면 젊은이들이 내 속도에 맞추는 듯해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연구실 안에서의 일도 마찬가지다. 박사후의 젊은 스태프들이나 새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면 그들이 연구실 환경과 실험에 적응할 동안 보살펴 주고 반대로 그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적용해서 새롭고 충실하게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발전의 원동력은 한 개인의 뛰어난 재능 보다 서로 인정하며 하나가 되는 팀워크라는 믿음은 오랜 경험이 준 깨우침이다.

삶은 홀로 설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이 함께 동행 하는 과정임을 연륜은 가르쳐 준다. 달력의 숫자나 시간에 밀려가거나 반대로 거역하는 삶이 되지 말고 세월과 순순히 동행하는 매일 매일이 되고 싶다.

2010년 새 십년의 출발점에서 서로 ‘나는 너의 동행이 되고 싶다.’ 고 웃으며, 모두 함께 가는 길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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