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환희
(기다림과 망설임 사이)
                                         조옥동/시인

출근길은 교통체증을 뚫고 가는 기다림과 망설임의 싸움이다. 마침 라디오에서 흐르는 로망스의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에 짜증을 달래며 베토벤과 함께 봄 속을 달린다. 봄비가 씻고 간 가로수의 줄기와 잎 그리고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 하나하나에 봄볕이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저쪽 산책길엔 유모차를 밀고 가는 햇살이 따사롭고, 흔들림과 망설임 사이를 뚫고 막 눈을 뜬 새 이파리와 꽃송이의 수줍은 웃음이 깨끗하다.

봄엔 날마다 같은 길을 가도 새롭게 보인다. 봄볕은 초목이 산고를 치르며 새 생명을 출산하는 원동력이 되어 요즘 수목이나 화초들을 보면 마치 언제 빨리 새눈을 트고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울까 마지막 인내를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나무의 끝에서는 망울망울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선 새잎이 나고 있다. 마치 여드름 불거진 얼굴에 어깨만 쳐도 울근불근 터질 듯 사춘기의 생기를 느낀다. 오랜 기다림이 풀릴 때 봇물처럼 쏟아지는 환희를 본다. 압축된 함성이 하늘로 솟는다.

무엇을 위한 기다림이었나? 새로운 세상, 새 생명을 만나는 최상의 기쁨을 위한 기다림이다. 꽃샘바람은 보다 일찍 피어난 초봄의 여린 꽃과 새잎을 무참히 떨어뜨렸다. 아직도 겨울을 벗지 않은 마른 나무는 회색의 침묵에 잠기고, 봄은 봄인데 누구에게나 똑 같이 오지 않는 봄을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새봄을 기다림은 출산을 앞에 둔 산모의 기다림에 비교된다. 280일을 입덧과 행여 그릇될 가 조심스런 몸가짐, 이리저리 누워도 불편한 만삭의 어려움, 자신의 생명을 건 출산의 고통 등 모든 것을 감내한 기다림 후에 새 생명은 태어난다.

겨울 하늘 찬 바다에 벗은 몸을 헹구며 봄을 기다리는 나목의 아름다움도 새 생명을 품고 고통 속에 새 세상을 향한 깊은 인내의 아름다움에 있다. 새로운 직장, 학교진학, 승진과 포상 등 단순한 기대와는 달리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와 치밀한 연구 후에 그 결과를 기다림도 있다. 기다림은 아름답다. 그러나 기다림의 인내를 어디쯤에서 포기할 것인가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피를 말릴 듯 인내는 아팠다.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표현한다.

사랑의 고백을 할 것인가 아닌가. 차선을 바꿀까 말까. 빅 세일에 쇼핑을 할까 말까. 주식을 살 것인가 팔 것인가. 생활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라고 순간을 다그치며 피로하게 만든다. 기다림을 포기할 수도 있다. 기다림을 포기하는 일은 성숙의 기회를 깨달음을 버릴 수도 있다. 기다림은 마음을 다스리며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건너가는 길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두고 온 가족을 못 잊어 평생을 거는 기다림도 있고 한 시간 하루를 거는 기다림도 있다. 농부는 계절을 기다린다. 나서부터 늙기까지 기다림과 기다림의 연속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자의나 타의로 중도에서 실망과 좌절도 맞는다. 수시로 흔드는 바람, 지진과 폭설, 태풍이 닥치고 질병과 길고 깊은 경제 불황도 덮친다.

기다림과 망설임 사이를 우왕좌왕 세월만 보낼 순 없다. 살 어름의 땅에서 수선화는 피고, 죽음의 땅 데스밸리에도 봄은 찾아온다. 목표를 향하여 마음을 다잡고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도 돕는다는 믿음으로 나의 봄, 그 때를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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