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10  '이 아침에'

오월에 온 귀한 손님

                                          조옥동/시인


이번 5월엔 귀한 손님이 L. A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물론 이곳에서도 문인 특히 시인은 그 분을 모르면 부끄러울 만큼 알아주는 시인이다.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8년간의 교장 직을 끝으로 45년 간 그것도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보내온 시인이다.

우리들의 저변을 흐르는 정통적인 서정의 수맥을 찾아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시를 계승하여 현대의 것으로 빚어놓은 희귀한 시인이다. 나태주 선생님을 말하고 싶은 것은 유명한 시인이기 때문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으로 남다른 한 인품을 말하고 싶다.

처음 나 시인을 만난 것은 꽤 오래 전 문학캠프에서였다. 한국에서 두 저명한 강사를 초청한 문학행사였다. 이 시인은 자신은 장에 가는 주인을 따라 나선 강아지라고 함께 온 강사를 치켜드리고 자기를 낮춰 소개하는 겸손을 보였다.

그의 시 ‘나는 파리에 가서도 향수를 사지 않았다.’에서 향수를 사지 않은 이유가 이 시인에게서 시 냄새를 풍겨준다. 그림엽서도 사고 작은 기념품들도 산후에 파리까지 와 립스틱 몇 개는 사 가지고 가는 게 가까운 여인네들한테 예의일 듯싶어 시인은 파리시내의 화장품 면세점에 들렀다. 랑콤, 샤넬, 유명 브랜드의 원산지 특히 향수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향수만은 사지 않았다.

아내에게서 나는 비릿한 풀 냄새, 딸에게서 나는 향긋한 풀꽃 냄새를 진한 향수보다 좋아하는 시인은 그들에서만 나는 그들의 향내를 흐리거나 지우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 향유하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그 마음이 이 시인의 사랑이고 사랑법이기에 시인에게서 묻어나는 품위 또한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다. 그 가족들의 비릿한 풀 냄새 또는 풀꽃냄새조차 좋아 보인다. 향기로운 자신만의 냄새를 지니고 살며 사랑받고 줄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 봄직하다.

그의 시는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깨끗하고 맑고 따뜻한 시어가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킨다. 그는 결핍의 시대에 나서 불행감과 절망을 시를 쓰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사망률 95%라는 병마와 싸우는 병상에서조차 시를 써 문인들을 놀라게 했다.

시련 뒤엔 선물과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깨닫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창작의 열정이 샘솟는다고 했다.

정년퇴임을 바라보며 "마지막 어린 제자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 이란 <이야기가 있는 시집>을 발행하고 그 속엔 손수 쓰고 그리고 촬영한 글씨와 그림과 사진으로 페이지마다 정성을 담아 나눠 주었다. 평생 교육자의 자리를 떠나는 퇴임식 날 교정에 모인 초등학교 전교생에게 반 다전의 연필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나는 너희들을 잊지 않을 터이니 너희들도 나를 잊지 말아라. 이 여섯 자루의 연필을 다 써서 닳을 때까지 만이라도 이 교장 선생님을 기억하라.”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평소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마다 그들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다. 도인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듯 글을 쓰는 자는 생활과 작품이 일치해야 한다는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 침착성이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깨끗한 인품을 지녔다.

평범하지 않으나 비범을 뽐내지 않는 진흙을 밟고 핀 연꽃 같은 그 인품이 좋다.
나 시인을 다시 만나 5월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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