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2010


      순간의 유혹에 내버린 양심
                                                     조옥동/시인

며칠 전 유난히 빨간 장미꽃 무리가 나직한 울타리 밖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한적한 골목길이라 꽃에 이끌려 속력을 줄이고 있는데 그 곳을 지나던 한 여인도 장미꽃 앞에서 멈칫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여인의 손에는 장미꽃이 쥐어져 있었다.
너무 순간적으로 눈앞의 풍경은 변하고 여인은 아랑곳없이 유유히 백미러에서 사라져 갔다.

문득 어렸을 때 일이 떠올랐다. 봄이면 부엉산 허리에 만발한 진달래꽃의 붉은 유혹에 못 이겨 친구들과 뒷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 꽃을 꺾다 미끄러져 벗겨진 꽃신을 잃을 번한 날 밤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의 무서운 꿈을 꾸면서도 진달래 꽃방망이를 만들어 꽃잎을 따 먹으며 마을로 내려오면 혓바닥은 진한 꽃물이 들었었다.

봉숭아 꽃물이 빨갛게 든 친구의 예쁜 손톱이 샘이 나 이웃집 봉숭아꽃을 앞치마 속에 몰래 따가지고 왔었다.  

지난해엔 시에서 집근처 골목길을 새로 포장 공사를 했다. 타일표면이 굳기도 전에 노란 줄 경고 표시를 무시하고 통과한 대형트럭이 깊게 파논 울퉁불퉁한 바퀴자국으로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차들이 흔들린다.

타인의 공들인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개인의 편리만을 생각하는 비열함을 주위에서 종종 겪는다. 시대와 사회인식의 변화에 따라 질서나 규범의 경계가 수시로 변하는 세상에서 가치와 윤리의 경계도 판별이 명확치 않다. 스스로 가슴에 깨끗한 손을 얹어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로나 도덕과 정의는 정답을 구해야 할 것 같다.

세포배양 상태를 관찰하려면 렌즈의 초점을 조정하며 눈이 아플 만큼 수시로 현미경을 본다. 며칠 전 시작한 생쥐의 뇌세포가 주어진 배양 조건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를 세밀히 살펴본다. 만일 실패하면 원하는 실험을 위하여 몇 마리의 생쥐 새끼를 희생하고 그 작은 머릿속 뇌 조직을 또 사용해야한다.

인류의 질병 퇴치라는 목적을 향하여 생명과학의 연구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될지 상상을 초월하며 나 또한 연구실에 있는 동안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작은 어린 동물을 수시로 살생해야 한다.

지정된 법규를 물론 존중하였지만 지난 수 십 년간 우리 연구실에서만 시용한 수많은 생쥐들의 죽음에 대하여 몇 퍼센트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떠한 가설을 세우고 그 사실을 현실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반복된 실험을 하고 오차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결과를 얻을 때만 그 수치는 연구논문에 기록된다. 동일한 실험을 계속해도 반반의 다른 결과를 얻을 때는 확증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도입 할 경우가 많다.

간혹 이미 얻은 숫자를 가설에 맞는 쪽으로 맞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숫자나 점 하나 사진만 바꾸어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촌각을 다투는 연구라는 경주에서 먼저 골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연구란 전 인류를 상대로 펼치는 학문의 정당한 올림픽경기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 하고는 그러한 모방이나 거짓은 행할 수도 없고 않는 것이 상아탑안의 양심이고 자존심이다. 아직은 어떤 사회보다 신뢰와 역동성을 발휘하는 이유다.

작은 잘못이 거듭되면 스스로를 변호하려 한다. 나쁜 습관이 개인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한 쪽 모퉁이가 흔들리는 징검다리는 사람을 물에 빠뜨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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