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1);2003년 5월 16일 토, 중앙일보


        바위에 대하여
                            


                                        선정주

        
         식어서 돌이 된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절묘한 운치를 보고
        누가 서인(庶人)이라 하리
        여름밤 열기를 달래며
        늦은 묵시를 기다려라
        
        숨을 쉰다는 것은
        이목구비만이 아니다
        문명의 바람에게
        맨살이 깎여나지만
        허물을 헨다는 것은
        살아있는 예증이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 날이다
        
        의구심대로 잘 모르겠다고 한다. 참 오래 잊고 살아 온
        격조(隔阻)때문만이 아닌 문명이 가져다준 득실의 생리를 따라
        나는 그에게 벌써 죽은 존재였었다. 이 소원(疏遠)에 대하여
        오늘은 이름을 붙여볼 참이다.
        
        바위의 거친 살결에
        핏줄이 돌면 어쩐다  
        (중략)

귀뚜라미 한 마리 아직도 방 한구석을 서성인다. 가을을 상징하는 귀뚜리가 사시상철 우리 주위를 맴돈다는 것은 무수한 촉수로 읽어 낼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한 여름 속에서도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홀로 울 수밖에 없는 고독한 울음이 있다. 시인은 한 마리의 귀뚜라미. 그러나 시인은 웬만한 바람에도 계절의 변화에도 움쭉 않는 바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단순히 식어서 주저앉은 무게의 버팀이 아니다. 바위도 그러면 생명이 있을가. 생김으로 말한다면 모양도 빛깔도 볼품없는 사람에게 비유한다면 평범 이하인 서민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물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닌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 운치가 있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시시각각 세계의 변화를 느끼고 있지만 존재의 의미, 생존의 진실을 깨달음은 천년도 만년도 부동의 자세로 앉아 여름밤의 묵시를 기다리는 바위 같은 진중함에서 얻는다.  살아 있음은 오관(五官)을 갖추고 단순히 날숨과 들숨의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위에 대하여」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도리와 세상사의 변화상을 묵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화자는 오랜만에 세상에서 잘 알려진 성공한 친구에게 전화했다. 희미한 옛 추억을 더듬어 반가운 마음으로 만날 기대감을 가지고. 그러나 의구심대로 저쪽의 반응은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번쯤 갖고 있다. “문명이 가져다 준 득실의 생리를 따라 나는 그에게 벌써 죽은 존재였다”는 고백은 의구심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 소원에 대하여 이름 붙이는 방식”은 현대 생활상의 보이지 않는 벽과 인간다움의 따뜻함을 상실한 우리들에게 주는 시인만이 줄 수 있는 메시지이다.

선정주시인은 목회자로 시조시인이다. 계간 현대시조 주간이며 6권의 시집을 내고 문예한국 문학상 대상을 비롯 많은 수상경력을 지닌 분으로 ‘생의 이법(理法)을 구하는 구도자’ 라는 평을 얻고 시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현대시조라는 베틀에서 수많은 비단으로 짜내고 있다.

조옥동(시인,L.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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