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미주 중앙일보/2012년 5월 31일
        
       깨어진 약속과 잃어버린 믿음                        

                                             조옥동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가. 간혹 약속이 깨져 실망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

인품에서 신용을 첫째로 꼽는다. 좋은 점을 아무리 자랑해도 상대가 인정치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결혼식 때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반지를 교환하는 일은 참 아름답다. 최상의 약속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결혼서약서를 만드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결혼식은 생략해도 법원에 가서 결혼인증서를 받는다. 몇 천 번의 언약만으로는 믿음의 증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지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혼돈된다.

너무 흔한 약속이 믿음을 흐리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보다 사람이 기계를 더 의존하고 문서를 선호한다. 이젠 형제끼리 심지어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을 문서화하여 법적인 제약을 포함시키고 있다.

차를 살 때, 집을 사거나 세입자를 두거나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크레딧 스코어라는 객관적인 신용 판단의 척도를 이용한다. 더 심한 일은 믿음을 약속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하듯 쉽게 생명까지 버린다.

작년 말 신년 예산으로 각 연구실의 오래된 컴퓨터를 새 모델로 교체한다 하여 우리 연구실도 8개를 신청해 놓고 있었다.

5개월이 되어서야 정보 센터의 컴퓨터 기술자가 나타나 하나씩 교체를 하는데 매번 자신이 정해놓은 시간을 못 지킨다. 경기침체로 많은 사람이 해고되어 손이 모자라 자동적으로 업무가 늘고 많은 일을 기간내에 마치기 어려운 현실을 실감케 해준다.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일도 많다.

사정이 어떻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 잃어버린 믿음은 회복이 어렵다. 꽃은 떨어져도 열매를 맺거나 흔적을 남기는데 사람은 신용이 떨어지면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잃을 수도 있다.

맹수가 나타났다고 세 번을 거짓말 한 까닭에 정작 사람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못 얻고 산짐승에게 잡혀갔다는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성경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인류최초의 약속을 어긴다.

그들은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모든 일을 뱀의 꼬임 때문이었다고 변명한다. 그 후로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은 물론 땀 흘리고 노력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핑계를 대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좋아하는 우리는 조상을 닮은 때문인가?

천재지변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약속은 어쩔 수 없어도 고의적인 약속파기는 용서할 수 없다. 성경에서 죄악시하는 동성애를 인정한다고 선언하며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신앙의 양심을 버리는 정치인이 있다. 자신과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할 사람은 타인과의 약속은 더 쉽게 버릴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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