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2012년 5월31일-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6.09 08:36
존재의 이유
조옥동
남은 길은
끝나지 않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지워지고 끊어진 듯 질기게 남은
머플러 하나 만들 만큼의 자투리 자락을
목에 둘러 따뜻한 인생의 끄트머리였으면 싶어
짧은 꼬리 붙잡으려 모퉁이 돌아 돌아가는 생각들 쥐오르다
밟힐 듯 잡힐 듯 허둥거리다 잊혔던 온 몸통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성난 저항을 만나다
본능이 살아 있는 자반고등어의
염장된 등 푸른 자존심
끝으로 밀려 온
맨 앞머리를
만지다
- 조옥동(1941 - ) ‘존재의 이유’ 전문.
머플러 끄트머리처럼 조금밖에 남지 않은 인생을 목에 둘렀을 때 기왕이면 그것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시의 전반부가 향 깊은 차를 마신 후처럼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순응하고 체념하고 나약하게 보내지만은 않겠다고 하는 후반부 또한 인상적이다. 비록 염장되었지만 아직도 등 푸른 자반고등어처럼 살아있는 자존심. 그것마저 버리고 살 수는 없다. 존재의 이유란다.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년 5월 31일자.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3 | 김남조의 행복----조옥동의<시와함께> | 조만연.조옥동 | 2005.05.01 | 568 |
182 | 흔적(痕迹) | 조만연.조옥동 | 2005.06.24 | 385 |
181 | 공기 한 줌(신지혜 詩)-THE NEW POETIC WAVES(미주시인 2005년 창간호) | 조만연.조옥동 | 2005.06.27 | 664 |
180 | 이명(耳鳴) | 조만연.조옥동 | 2005.11.14 | 556 |
179 | 태풍이 지난 후 | 조만연.조옥동 | 2005.11.14 | 567 |
178 | 쏟아지는 햇살 아래------LA 성시화대회 특집3호 (2005년 11월17일 발행) | 조만연.조옥동 | 2005.11.21 | 516 |
177 | 한국사람 냄새 | 조만연.조옥동 | 2005.11.21 | 732 |
176 | 어둠이 나를 삼킨다 | 조만연.조옥동 | 2006.03.19 | 565 |
175 | 시간은 두 발에 징을 박고 | 조만연.조옥동 | 2006.03.19 | 537 |
174 | 발보아 호숫가의 철새들(2006년 <에세이 21> 여름호에서) | 조만연.조옥동 | 2006.06.10 | 571 |
173 | 박남희 시집 <이불속의 쥐>에서---[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6년 5-6월호 | 조만연.조옥동 | 2006.06.10 | 768 |
172 | 하얀 재채기(2006년 여름 출간"시인의 눈" 2집 에서) | 조만연.조옥동 | 2006.07.08 | 541 |
171 | 달개비 죽 | 조만연.조옥동 | 2006.08.13 | 446 |
170 | 문인이 문인이 되려면 | 조만연.조옥동 | 2006.08.13 | 565 |
169 | 살아 남을 역사 그것이 두렵다 | 조만연.조옥동 | 2006.08.25 | 377 |
168 | 깨진 유리창이 웃는다 ----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6년 9-10월호 | 조만연.조옥동 | 2006.09.16 | 567 |
167 | 꿈의 PH 7.0 구역 | 조만연.조옥동 | 2006.09.23 | 381 |
166 | 분 바르는 글 한 줄 | 조만연.조옥동 | 2007.01.02 | 365 |
165 | 새해 세쿼이아숲에서 | 조만연.조옥동 | 2007.01.02 | 335 |
164 | 새벽 시장 | 조만연.조옥동 | 2007.01.04 | 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