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조옥동



남은 길은

끝나지 않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지워지고 끊어진 듯 질기게 남은

머플러 하나 만들 만큼의 자투리 자락을

목에 둘러 따뜻한 인생의 끄트머리였으면 싶어

짧은 꼬리 붙잡으려 모퉁이 돌아 돌아가는 생각들 쥐오르다

밟힐 듯 잡힐 듯 허둥거리다 잊혔던 온 몸통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성난 저항을 만나다

본능이 살아 있는 자반고등어의

염장된 등 푸른 자존심

끝으로 밀려 온

맨 앞머리를

만지다




- 조옥동(1941 -   ) ‘존재의 이유’ 전문.




머플러 끄트머리처럼 조금밖에 남지 않은 인생을 목에 둘렀을 때 기왕이면 그것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시의 전반부가 향 깊은 차를 마신 후처럼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순응하고 체념하고 나약하게 보내지만은 않겠다고 하는 후반부 또한 인상적이다. 비록 염장되었지만 아직도 등 푸른 자반고등어처럼 살아있는 자존심. 그것마저 버리고 살 수는 없다. 존재의 이유란다.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년 5월 31일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3 작은 풀꽃 조만연.조옥동 2008.02.25 480
142 새해의 축복을 비는 마음 조만연.조옥동 2005.01.06 478
141 세월 1,2 조만연.조옥동 2012.03.13 469
140 헛디딘 발에게 조만연.조옥동 2004.07.28 463
139 1976년 가을 어느 날---나의 이민 초기 조옥동 2016.01.17 458
138 네게로 흐르는 강 조만연.조옥동 2012.03.25 457
137 꽃몸살 조만연.조옥동 2012.03.22 457
136 순결한 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주소서/2012년 <America Holy>신년 권두시 조만연.조옥동 2012.12.11 455
135 옥은 지금 없어요 조옥동 2003.11.29 454
» 존재의 이유/2012년 5월31일-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조만연.조옥동 2012.06.09 451
133 믿음이 만날 때 조만연.조옥동 2005.04.22 451
132 버지니아의 가을 길 조만연.조옥동 2007.10.13 450
131 숫자 놀음 조옥동 2003.05.10 450
130 41년만의 데이트 신청 조만연.조옥동 2004.12.24 449
129 쪽방살이/문학과 의식 2012년 봄호 조만연.조옥동 2012.04.10 448
128 값없이 받은 귀한 선물/'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조만연.조옥동 2012.03.16 448
127 웨스턴 길 산山다방/2010년 <시사사>3-4월호 조만연.조옥동 2012.03.13 447
126 계절이 생리를 치르고 나면 (2007년 5월 발간 <시인의 눈> 3집에서) 조만연.조옥동 2007.05.22 446
125 달개비 죽 조만연.조옥동 2006.08.13 446
124 보이지 않는 길 조옥동 2003.05.10 446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
전체:
97,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