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2012 '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수컷 생쥐 세 마리는 왜 싸웠을까

                                            조옥동/시인

전화벨이 크게 울려 수화기를 드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급히 일을 멈추고 동료 둘이서 실험용 동물 사육장으로 달려갔다.
실험용 생쥐 사육 실엔 종자가 다른 200여 마리의 생쥐를 60여개의 사육 상자에 넣어 기르며 날마다 사육장 직원들이 하나하나 관찰하여 특별한 사태가 생길 때마다 각 연구실에 보고를 한다. 새끼들이 자라 3주간의 수유기가 지나면 어미를 떼어 놓기도 하고, 병이 나면 조처를 하라는 통지를 해준다.  

머리덮개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일회용 가운에 비닐장갑을 끼고 신발위엔 덧버선까지 신는 등 완전히 사육실용 복장을 하고서야 지정된 사람만 출입이 허용되는 사육실로 밀고 들어섰다.
경고용 노란색 관찰카드가 꽂혀있는 한 상자를 발견했다. 며칠 전, 새끼를 낳은 어미 생쥐들로부터 각각 분방하여 세 마리의 홀아비 생쥐들을 모아놓은 상자다.

격렬하게 싸운다는 기록을 읽고 상자를 열자 너무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한 마리는 구석에 두려운 듯 숨어 있고 두 마리는 각각 가슴에 할퀸 자국과 아래쪽 중요 부분이 물리고 찢긴 심한 상처로 피를 흘리며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필이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생쥐들은 DNA 변형으로 꼬리를 퇴화시켜 꼬리가 없다. 우리 연구실은 성숙한 암수 몇 마리를 비싸게 주문하여 사육장에서 증식을 하고 있다. 아비 노릇을 잘하여 암놈과 짝짓기를 할 때마다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은 기록이 있어 앞으로도 유용한 놈들인데 이렇게 심하게 싸우고 넘어질 줄은 몰랐다.

어떤 놈을 야단을 쳐야할지 모르겠다. 둘만이 치고 물어뜯고 싸웠는지 성한 놈이 다른 두 놈을 해쳤는지 말이 안 통하는 동물이라 이런 저런 상상을 하노라니 별 해괴망측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요즈음 이슈화 되고 있는 동성 간의 결합을 위한 삼각관계로 혈투를 벌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하노라니 인간이란 동물이 때로 얼마나 모멸스런 존재인지 부끄럽다.

그들에겐 싸움을 위한 무기도 없고, 싸움을 위한 훈련이나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다. 그들의 세계엔 정치 경제 문학이나 수구꼴통이니 종북이니 하는 사상논쟁도 없으니 다행이다. 맹수들이 자신의 구역을 지키려 목숨을 걸고 싸우듯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고 지키려면 싸워 살아남아야겠다는 종족보존 본능이 작용했을 것 같다. 생쥐와 인간이 소통할 방법은 없지만 우리는 힘이 있고 강한 것보다 이들같이 작고 약한 것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우선 성한 놈은 새 상자에 분리시킨 후,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물병에는 항생제를 타서 마시도록 조치를 했다. 수의로부터 2주간의 치료를 권고 받았다.

자유로 먹고 마시고 항상 습도와 온도를 맞춰 가장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궁색한 사람들의 생활보다 호강을 하고 있는 생쥐들의 팔자다.

많은 새끼를 증식하는 일만이 오직 최선의 삶이 된 그들로부터 생산한 새끼들은 여러 모양의 실험용으로 사용된다. 작은 생쥐의 생명은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의 생명연장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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