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012 '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몸의 장애, 마음의 장애
                                                  조옥동

뜨거운 보도에 홀로 휠체어를 밀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깥출입이 힘들만큼 덥고 햇빛이 강한 여름날이었다. 그는 휠체어를 한 손으로 움직이며 손잡이에는 흰 비닐봉지를 매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길 위의 휴지를 줍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 구부린 허리와 하얀 등살이 티셔츠 밖으로 훤히 보이도록 머리를 떨어뜨리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멀어져 갔다. 뒤쫓아 가서 왜 불편한 몸으로 그토록 힘겹게 휴지를 줍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는 매일 다니는 동네 골목길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온전한 모습이나 장애인이다. 이미 한 쪽 청력을 잃었고 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인공 골반을 넣고 살아 왔다. 사실 나에게는 뼈가 저리는 육신의 아픔보다 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장애가 있다. 나는 인내하는 능력이 특히 부족하다. 쉽게 실망하고 원망하며 외로움을 탄다. 정작은 뜨거운 눈물이,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다.

비록 육신의 장애가 있다 해도 고난과 불편을 참고 견디는 정신의 소유자는 장애자가 아니다. 힘들고 어렵다하여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자가 장애자다.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고 휴지를 줍는 그의 가슴은 얼마나 따뜻할까. 자신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이 모든 것을 품는 힘임을 그가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망상가나 과소평가하는 축소형의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크게 포장하여 과시하거나 소심하여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꽁무니를 빼다시피 뒤로 숨는 자도 적지 않다. 용기가 가상하고 정정당당하여 믿음이 가는 형이 있는가 하면 양보심이 있고 정중하고 겸손함이 몸에 배인 형도 드물지 않다. 양쪽 모두 지나치면 실망을 주고 비굴해 보인다. 세상사에 중용을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사람들은 베푸는 자를 좋아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더욱 움켜쥔다. 목숨을 내 놓고 타인의 생명을 구출한 영웅을 칭찬하다가 위기를 당하면 제일 먼저 도망을 친다.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를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휠체어 위의 장애인같이 길가의 지저분한 장애물을 피해가는 대신 청소하는 자는 드물다. 나는 어느 형에 가까운 인간인가?  

지질탐사 활동 중, 자동차 전복사고로 이상묵 교수는 오직 두뇌만 살아있던 식물인간이었다.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강단에서 후학을 기르며 연구를 계속하여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그가 말한다. 비록 삶은 휠체어 안으로 들어왔으나 “나의 삶은 조금도 좁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신을 리사이클 맨 즉 재활용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멀리 돌아갔지만 다시 돌이키는 길, 버린 삶이 아니라 다시 찾는 삶이 진정한 자기긍정이다. 첫째 나는 장애임을 인정하고 나의 쓸 만한 장점을 찾고 싶다. 나도 재활용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불편한 다리를 뻗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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