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現代詩學」신작특집

발보아 파크로 오세요

                                                                                     조옥동

‘해 뜨는 시간부터 해지는 시간까지’
세상 출입구와 시간표는 있으나 마나 아닌 가요

문이 없는 하늘 맘대로 열고 닫는 철새들이 찾아와
그 결사적인 모험담을 기록하는 발보아 숲은
촘촘한 시간 늘 밤잠이 모자라 졸고 싶은데
축제일 아니어도 일찍부터 몰려드는 발들 멈춰 세우고
수많은 청둥오리 침묵을 메고 뒤뚱뒤뚱 짝지어 행진할 때
풀밭을 이미 점령한 박색의 박새 떼와
미명에 묻힌 팽팽한 긴장을 할퀴는 솔바람소리에
기도를 끝내며 눈을 뜨는 나목들
물구나무서는 발보아 호수는 술렁이는 척 매끄럽죠
동쪽 할리우드산 훤한 새벽을 들어 눈짓만 해도
낮은 산 볼록한 가슴마다 발효되는 출렁거림을
환희와 기쁨 모두 꺼내들고 붓 칠을 시작하는
가장 어린 햇살, 늦잠을 깨는 하품소리와
졸음을 파랗게 깨우는 웃음소리 걸쳐놓은
온갖 인종들의 피부색을 파도치는 무지개라 그려놓죠

유난히 뜨거운 호흡을 불어내는 밸리 고을
꽃 멍울 진한 아픔이 신열을 앓는 날엔  
서로서로 불러 모인 인상파 화백들, 허약한 희망위에
울긋불긋 색종이를 오려서 어여쁘게 붙이는 곳
과잉으로 공급받은 외로움의 귀걸이를 하나씩 팔매를 쳐도
물고기 송사리 떼 무심하게 헤엄쳐 가고, 백조와 두루미와
운명의 디아스포라들 떠나온 본향을 묵상하는 곳  
매연이 누렇게 덮인 골목에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탄식들, 기찻길 건너서 시내버스 두어 번 갈아타고
발보아 파크로 오세요 해 지는 시간보다는 이르게
황혼이 공고문을 빨갛게 지우기 전에



* Balboa 파크; L. A의 서북쪽으로 20마일, 샌퍼낸도 밸리에 인공호수가   있는 큰 파크로 온갖 철새와 인종들이 모여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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