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비닐하우스

                                                     조옥동

빨갛게 전염된 입새들은 푸른 병원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고, 움츠러진 어깨위의 붉은 융단이 흘러내려 저무는 햇살이 비닐하우스 속을 굽어 보다 들 괭이의 털 속으로 숨다. 검은 털 속의 햇살을 핥으며 늙은 고양이 야옹거리면 세상 골목길은 어두워가고

비닐하우스에 푸른 전등이 켜지고 푸른 모자를 쓴 파란 손이 푸른 기둥에 빨간 두 팔을 접었다 폈다하는 시계를 매단다. 푸른 별빛이 쏟아지고 푸른 바람을 꾀어 비닐하우스둘레를 돌고 돌다 사라지다. 시계의 두 팔이 겹치고 전등이 꺼지고 회색의 밤이 겨울잠 속을 파고들다. 꿈꾸는 시간은 짧고 아쉽다 연속극의 도막난 마지막 무대처럼

지상의 비닐하우스마다 비밀이란 열쇠를 키우는 그린 덤. 울긋불긋 매니큐어를 바른 뾰족한 손톱이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봐도 비닐 벽을 뚫을 듯한 바람소리뿐, 한겨울 흙 속에 갇혔던 시간들 팽창을 한다. 밖으로 빠져 나간 시간은 걷다가 뛰기도 하며 마른 가지를 타고 높이 오르다. 아무리 마셔도 배부르지 않은 물만을 퍼  올리던 나뭇가지에 수 천 개의 입이 열리고 호흡을 할 때마다 꽃잎으로 피어나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그 말씀의 수많은 언어들 땅위에 쏟아져 눕다. 향기를 줍기 원하는 거리의 손님들은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찾고 있는데

도도한 체면을 걷어 내지 못한 비닐하우스, 푸른 손가락은 비밀이 새나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 진화되는 종자를 찾아 심고 또 심다. 계절이 열릴 때면 밖으로 운반되는 언어들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가다. 단단하고 맛있게 잘 익어야 할 세월은 놓치면서

마천루 아래 엎어 놓은 지상의 비닐하우스, 폭풍이 지나면 가슴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창백한 자리는 바꾸지 못하는 영원한 그늘이라. 파란 손가락엔 은총의 햇빛을 마음껏 바르고 싶은 그리움 터지게 불어 넣은 슬픔의 풍선이 매달려 있다

*그린 덤(green thumb:푸른 손가락);식물 재배의 재능, 또는 성공의 재능을 의미함.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3 세월 1, 2 조만연.조옥동 2009.01.23 218
202 8월 어느날/2013년"재미수필" 14집 조만연.조옥동 2013.12.14 236
201 그대는 마중물/<밸리 코리언뉴스>창간 26주년 기념 축시 조만연.조옥동 2013.08.31 237
200 10월의 기도/헌신 예배를 위한 獻詩 조만연.조옥동 2014.10.19 241
199 달구경 조만연.조옥동 2009.05.18 246
198 하룻길 조만연.조옥동 2009.05.18 247
197 카나리아의 노래/한국"시사사(Poetry Lovers)" 7-8월호,2014 조만연.조옥동 2014.09.11 252
196 10월 하늘은 높고 / <밸리코리언뉴스>10월호-2016 [1] 조옥동 2016.11.03 255
195 생성과 소멸의 회로 조만연.조옥동 2013.01.31 256
194 혀끝을 굴려라(문학산책 2008) 조만연.조옥동 2009.05.10 257
193 데스칸소 가든에서/한국 <시사사>2013년 7-8월호 조만연.조옥동 2013.07.25 262
192 다시금 아멘 아멘 --------- 조옥동 조옥동 2017.01.07 264
191 나는 가시나무 조만연.조옥동 2009.05.18 280
190 황혼 2/한국<시사사>2010년 3-4월호 조만연.조옥동 2012.03.13 282
189 감사의 끝자리 조만연.조옥동 2007.10.13 284
188 황혼 조만연.조옥동 2009.01.23 293
187 어느 귀거래歸去來 조만연.조옥동 2012.03.23 300
186 마지막 헌화 조만연.조옥동 2013.01.31 303
185 그믐달-2009년 <불교문예>여름호- 조만연.조옥동 2009.06.14 304
184 눈물로 쓰는 편지 조만연.조옥동 2009.02.27 305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2
전체:
97,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