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칸소 가든에서
                                               조옥동

사막의 동백이 피를 토하고 맨 땅에 누워 버린 골짜기
철없던 용기와 화려했던 모습은 흐트러져 핏물이 흥건타
춥고 어둔 밤을 새우며 사랑에 굶주린 시절 지나
한동안 뜨겁게 달궈진 동백의 하늘은 서서히
냉정한 빛깔로 정염의 온도를 내리고

숨차게 언덕을 오르니
데스칸소 가든의 장미들
빼앗긴 봄을 내 놓으라고
가시 돋친 가슴을 열고 발을 구르는데
햇살은 여름에게 새파란 모자를 씌운다

오고 가는 사람 많은데 누굴 기다리나
빈 의자 하나
눈부신 풀꽃들 도란도란 말소리 낮추는
따스한 적막을 두르고 앉아
바람이 스쳐도 확 불지를 듯 맑은 눈빛으로
이름을 부르면 나올 것만 같은 누굴 위해
홀로 앉지 못하고 비워 둔 자리인가

우리 속에서 빠져나간 발가벗은 외로움이
불안과 공허 갈망과 번민의 네 다리로 버티고 앉아
다가온 발걸음들 결국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기만 하는
저 풍경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다 돌아 온
너와 나를 숨겨 놓은 그림이다

  
* 데스칸소 가든: LA 북동쪽에 있는 공원, 세계에서 제일 큰 동백꽃 단지로 유명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 단풍으로 만든 명함 조만연.조옥동 2004.11.21 560
42 봄맞이 대청소를 하며/'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조만연.조옥동 2012.03.22 560
41 생쥐들의 장례식 날/'시인의 눈' 2011년 조만연.조옥동 2012.04.10 561
40 시와 시인/타고르의 시세계 ---- 조옥동 조옥동 2017.01.07 564
39 고구마와 단풍잎 조만연.조옥동 2004.11.28 565
38 어둠이 나를 삼킨다 조만연.조옥동 2006.03.19 565
37 문인이 문인이 되려면 조만연.조옥동 2006.08.13 565
36 깨진 유리창이 웃는다 ----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6년 9-10월호 조만연.조옥동 2006.09.16 567
35 김남조의 행복----조옥동의<시와함께> 조만연.조옥동 2005.05.01 568
34 태풍이 지난 후 조만연.조옥동 2005.11.14 568
33 발보아 호숫가의 철새들(2006년 <에세이 21> 여름호에서) 조만연.조옥동 2006.06.10 571
32 데스밸리는 살아있다/'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조만연.조옥동 2012.03.31 571
31 내가 좋아 하는 꽃----에피필럼 조만연.조옥동 2009.05.16 575
30 프리웨이 인생 조만연.조옥동 2004.10.23 581
29 산타모니카 해변에서/「現代詩學」2012년 3월호, 신작특집시 조만연.조옥동 2012.03.15 589
28 행복은 투명한 유리알 -(2009년<서시>여름호) 조만연.조옥동 2009.06.26 590
27 이근배의 시- 자진한 잎 조만연.조옥동 2005.01.13 593
26 봄볕이 나에게 말을 걸다/'이 아침에' 미주중앙일보 조만연.조옥동 2012.03.08 597
25 가시 하나 되어 조만연.조옥동 2007.05.26 598
24 발보아 파크로 오세요/ 한국 「現代詩學」2012년 11월호 조만연.조옥동 2012.11.15 598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7
어제:
0
전체:
97,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