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을 걸다

                                              조옥동

조용하고 한적한 도로를 계속 달리는 차창 속에 앉았노라면 잔잔한 외로움이 조용히 안겨온다. 이런 때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많은 이들은 화려한 거리의 군중 속에서도 고독이란 병을 앓고 있다. 스스로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 무엇이 우리를 외롭게 한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던 어느 스님의 말에 주문을 걸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몰라. 사랑이 너무 헤프거나 반대로 계산적이고 인색한 것은 내 탓인지 세상 탓인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가도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오직 풀밭, 시원스러운 초원의 넓은 자락이 하늘을 만진다. 변함없는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좌우로 펼쳐진 푸른 스펀지로 도심생활에서 묻어 온 온갖 걱정과 염려, 생각의 잡동사니들이 닦여지고 있었다. 생활주변에 복잡하게 얽혀 늘어진 머릿속의 거미줄은 맑은 하늘과 청정한 공기 스프레이로 깨끗이 지워진 듯하다. 대화를 잊은 일행은 침묵이 편안해 보였다. 무료하고 단조로움으로 포만감을 느낄 만큼 무념무상의 시간을 가져본지가 얼마만인가? 하루의 끝을 향하여 소리 없이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운동을 등받이에 맡기고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차는 계속 움직여도 창밖의 풍경은 한 결 같이 푸른색 일색이다.
코로라도 주를 빠져나와 와이오밍 주로 접어들면서 길은 더욱 완만한 굽이를 틀고 이 곳 저 곳에서 검은 들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작은 얼룩무늬를 푸른 바탕에 찍어 놓은 듯 창밖의 여름풍경은 더 푸르러 보이고 시원하다.

너무 자주 바뀌는 창밖풍경은 낯설다. 봄이 겨울의 풍경을 갈아놓고 여름은 가을로 바뀐다. 마음문을 열고 느끼고 흡수하기도 전에 풍경은 바뀌거나 때로는 묶어 놓은 듯 꽁꽁 얼어버린다.  바람은 자주 불어와 창문을 두드리며 무엇을 재촉 하듯 흔들고 지나간다. 세상바람도 만만치 않다. 세상과 통하는 문은 계속 닫히고 열리고  그때마다 잡음을 내거나 시끄러운 일이 많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매끄럽게 열고 닫힌 창문을 일찍이 가져보았던가?  

내 유년의 고향집에는 커다란 유리 창문이 없었다. 마루로 나가는 미닫이문에 아주 작은 유리조각을 붙여 놓고 그 곳에 얼굴을 대고 마당의 동정을 살피곤 했다. 문이란 문은 모두 창호지를 발라 일 년에 한 번씩 봄철이 되면 풀을 새로 쒀 묵은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를 발랐다. 그 작은 유리조각 하나로는 답답하여 간혹 손가락 구멍을 뚫어 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은 크고 밝은 창문을 좋아한다.

나는 넓은 창문을 만들고 그 창문에 프리즘을 넣고 싶다. 푸른 것이 지닌 푸른색을, 노란 것이 품은 노란색을, 빨강은 빨갛게 그대로 모든 사물이 가진 본연의 색을  보고 싶다. 하지만 빛이 없으면 모두 검게 보이고, 어둠 뿐, 그래 빛이 있어야 해. 빛은 무엇일까? 무슨 방법으로 빛을 얻을 수 있을까? 바깥은 밝아도 안쪽은 캄캄할 때 너무 답답하다. 스스로 빛을 만들 수는 없는가. 내 마음속 계단을 밟고 차근차근 내려가 우선 찾아볼 것이 있다. 불꽃을 만들 만한 불씨는 어디에 간직하였는지 살펴봐야겠다. 투명한 영혼, 깨끗하고 순정한 가슴, 따뜻한 사랑과 이해라는 구슬을 꿰는 생각  ……  아니, 마음은 가슴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 있다든가. 높이 그리고 비밀스럽게 위치한 그 다락방을 찾아 올라가 노크를 해야겠다.

지평선이 아른아른 흔들리며 흐려지고 하늘이 연한 수채화를 펼친다. 고정된 관념으론 변화무쌍한 자연이 헤아릴 수 없이 펼쳐 놓은 그 기호들, 세상을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자 창조주 외에 누가 있을 가.
나를 아는 별빛을 만나면 얘기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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