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조옥동의 '약속')-중앙일보에서

2007.08.09 16:49

조옥동 조회 수:590 추천:71

             약속

                                      조옥동

늙는다는 것 세월을 향한 약속입니다
약속의 층계를 열심으로 오르내려
붉은 신호들 예서 제서 번쩍이고
말초신경 끝에서 신음하는 밤마다
청보리밭 이랑에 물결치던 어린 봄바람은
이마의 잔주름을 간지럼 핍니다

비탈에 선 나무들
푸른 열망을 삭혀 핏빛으로 뱉어내는 가을 지나
엄동의 회초리 피 맺히는 살 밑에  
순해지는 씨-눈, 눈 비비며 내일의 꽃잎에  
색칠할 물감을 고르는 겨울이 있고

허술하게 늙는 것 아니라고
씨앗이 씨앗을 얻기까지 계절의 속살거림 모두 새겨
도드라진 상처로 단단한 껍질 때문에 그 약속 아름답고요

늙어 가는 일은 세월과의 약속입니다
어제와의 탯줄을 끊고 새것으로 태어나는
이 약속을 지키려 계속 몸살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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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속담에 "산다느 건 투쟁을 의미 한다" 했습니다. 형이상(刑而上)과 하(下) 그 자신과의 관계, 나와 타자와의,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언젠가는 영영 떠나야 하는 죽음과의 약속, 끝내 놓아버리지 못하는 허탈감, 그 희망과의 약속, 이 모두가 가슴과 눈에서 떠날 수 없는 슬픔에의 약속, 이 모두가 가슴과 눈에서 떠날 수 없는 강물 같은 약속입니다.
우리 비탈에 선 나무들, 늙는다는 건 세월을 향한 약속이지만,때로 청보리 밭이랑에 물결치던 유년의 추억으로 꿈꿉니다. 여름. 가을을 지나 씨앗을 맺기까지는 결코 허술하게 늙느 것 아니라고. 도드라진 상처로 단단한 껍질 만드는 것, 그것이 산다는 것의 약속입니다.

임창현: 시인.평론가 chym38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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