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 이야기
2005.11.08 04:10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가을날 아침 일찍 강의실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펄럭이는 빨간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앞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긴 머리는 출렁출렁 걸음은 사뿐사뿐 청명한 가을날씨같이 가볍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더 빠르게 걸었습니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갑자기 돌개바람이 쌩 불더니 그녀의 치마를 휙 들쳐 올렸습니다. 어맛-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올라간 치마를 얼른 감싸고 주저앉으면서 사방을 돌아보는 그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근처에 있던 유일한 증인이던 나. 노려보는 발그래진 얼굴의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했습니다. “난 아무것도 안 봤어요. 흰색 속옷도 못 봤고요.” 내가 여자에게 했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만은 빼고 말입니다.
다음날 그 길에서 다시 마주친 그녀가 다가와서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 봤죠? 책임지세요.” 당황한 내가 물었습니다. “제가 뭘 어쨌나요? 안 봤다고 했잖아요.” “남자가 치사하게 꽁무니를 뺀다 이거죠. 비겁하게 거짓말까지?” 내가 일학년이라고 우습게 여기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도 심각하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요. 그러면 저도 속살을 보여주면 되잖아요. 자 보세요.” 그리고 나는 입을 앙 벌리고 혓바닥을 길게 빼물었습니다. 갑자기 은방울 구르는 소리를 내며 그녀가 웃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느라 속살을 또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나도 속살을 보여주며 크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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