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마력

2005.11.18 07:59

고대진 조회 수:75

 교회에서 돌아오면서 마누라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당신 교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던데요. 어- 이거 무슨 말이지? 저녁 사달라고 하는 말은 아닌 거 같고…. 오늘 어떤 할머니가 말하더라고요. 당신 인상이 참 좋다고. 지난번에도 다른 할머니가 그랬는데….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잘 나간다 했지 하면서도 은근히 젊은 여자들이 좋아했으면 더 좋지 해보는 내 움푹한 허영심.  할머니들을 만나면 어머니 같은 생각이 들어 참 편하고 좋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말도 잘 하고 인사도 잘해 저절로 좋은 인상을 받게된 것이리라. 마누라가 잘 몰라서 그렇지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연령층이 할머니들 말고 또 있다. 한 살에서 열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남녀 구별 없이 좋아하지만 특히 딸이 없는 난 조그만 여자아이들을 무척 예뻐한다. 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마술도 배우고 저글링도 배웠다. 이만큼 시간과 정성과 관심을 투자했으니 아이들이 날 좋아하는 것은 결코 내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친구들에게는 날 좋아하는 여자들은 평균 삼십대의 어여쁜 여인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평균연령이 다섯 살이고 또 날 좋아하는 할머니들의 평균연세가 65세이니까 전체 평균은 (5+65)/2 = 35가 되기 때문이다. 쉰 냄새가 나는 50대의 내가 35세 가량의 젊은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있는 거라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그러긴 했다. 통계학자는 머리엔 뜨거운 화로를 올려놓고 발은 얼음물에 담가서 아 따스한 봄날 같다 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나의 숫자가 가져오는 착각의 행복은 통계학을 몰라도 누구나 경험한다. 숫자가 주는 포만감은 마음의 자세를 자칫 위험한 곳으로 내몰기도 한다. 평균 소득이라든가 평균 실업률 혹은 평균 지지율 등등 건조한 숫자만의 세계. 이건 숫자가 재미없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한 숫자만을 가지고 버티려는 것이 문제이다. 더구나 특정한 이해관계나 목적을 위해 조작된 통계라면 -요즘도 한국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또 그것 위에 국가의 정책이나 선거 전략이 세워진다면 드라마는 완전한 코미디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서른 다섯의 여자에게 인기가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웃기는 코미디 말이다. <미주 중앙일보 2002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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