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 鐘波
2005.11.18 12:57
미련 / 鐘波
색동옷 입고 너울거리는 가을. 빗줄기가 동면을 강요한다.
저편 하늘 끝에서 이편 하늘까지 긴 칼날을 휘두르는 번개.
천둥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귀청을 찌른다.
컴퓨터는 빗소리에 음악을 섞어 누운 침대를 요람으로
흔들며 눈을 감긴다.
심안이 렌즈를 열어 책꽂이와 벽을 비춰 깨우니 추억은
이들을 연출한다. 출연하는 책들, 노트들, 앨범들, 증서들,
패(牌)들이 지난 삶을 재연한다. 사색한다, 뛰고 달린다.
연장 들고 열심히 일한다.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
표창을 받고 갈채 받는다. 경영하고 베푼다. 자랑스러운
공적을 찬란한 파노라마로 펼친다.
부모님의 유품들은 끼어들어 불효했던 상처를 건드린다.
파노라마에 눌러 붙은 미련이 유품 처리를 잊으니,
가슴에 단풍만 일렁이는 인생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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