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012.02.03 13:41

정국희 조회 수:780 추천:79



바람


도무지 수상했다
참으로 수상쩍었다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닌 것이
그때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검불이나 날리며 건듯 스쳐가는 그런 바람이 아니었다
호박은 못 움직여도 사람은 돌아서게 할
한마디로 허랑방탕하고 느자구 없는 바람이었다
휘파람 불며 샤워 끝내고
고개 돌려 뒷모습까지 비쳐보며
짧게 웃고 나가는 것은 사실 단서가 아니었다
낌새로 오는 것
느낌으로 오는 것
여자의 본능은 물증이 없어도 심증으로
신 내린 지 사십 년 된 천수보살보다 더 정확하게
가락을 타고 줄줄이 체감으로 스며 오는데
척 보면 삼천 리 일어서면 삼만 리 산 귀신인데
바람소리만 들어도 태풍이 오는지 가는지 다 아는데
하물며 잠자리에서 치사하게 뒤척이는
꿍꿍이속을 어찌 모를까
똥낀 놈이 성낸다고
잔머리 굴리다 되려 펄쩍 뛰는 신경질과
피부세포 맹랑하게 가동하는 소리를
모르고 있는 것은 바람 저 혼자 뿐이었다
속 창아리도 없이
옴팡지게 속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냥 모르는 척 속아 주고 있었다는 걸
바람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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