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2012.11.30 02:38
향수
손님 없는 계산대에 앉아
깜박 졸음이 들라치면
아득하게 먼 샛길이 보인다
그러면 두 눈 그대로 감고
맨드라미 싸리나무 육모초
옹기종기 줄지어 선 돌담길로
찰랑찰랑 걸어가는 어린 소녀 본다
사시장철 풍치 좋은 산 아래
사대부집 후손으로 자리잡은 집
마당에서 놀던 감빛 햇살
불썬바위로 넘어가면
부녀자들 빌미 만들어 모여들던 집
전생은 어쨌든 간에
후생은 구렁이 되었다는
택호가 영암댁인 작은 할머니
당골네 말이 영험 있었던지
뒷간이나 곳간까지 구렁이 얼씬거려 쌓더니
끝내는 할아버지 데려가 불고
가산이 차츰차츰 반으로 줄어들었던 집
구렁이 같은 년이라고
눈꼬리 사납게 흘겨대쌓던 울할머니
큰 굿하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던 그 집으로
함마니 함마니
쪼르륵 달려가는 어린 소녀 본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3 | 바람 | 정국희 | 2012.02.03 | 780 |
82 | 80년대에서 2천년대에 이르는 시의 흐름과 변증법 | 정국희 | 2012.02.03 | 1034 |
81 | 신발 뒷굽을 자르다 | 정국희 | 2012.01.20 | 584 |
80 | 물방을 | 정국희 | 2011.12.28 | 637 |
79 | 선 | 정국희 | 2011.12.13 | 556 |
78 | 기도 | 정국희 | 2011.10.01 | 637 |
77 | 포쇄 | 정국희 | 2011.09.25 | 712 |
76 | 다음 생이 있다면 | 정국희 | 2011.09.12 | 583 |
75 | 영정사진 | 정국희 | 2011.08.31 | 571 |
74 | 가끔은 | 정국희 | 2011.08.17 | 591 |
73 | 바람아 | 정국희 | 2011.07.17 | 521 |
72 | 한국일보 창간 42주년 기념 축시 | 정국희 | 2011.06.12 | 589 |
71 | 소 | 정국희 | 2011.05.22 | 620 |
70 | 나의 아바타 | 정국희 | 2011.04.20 | 687 |
69 | 청실홍실 | 정국희 | 2011.04.07 | 730 |
68 | 등을 내준다는 것 | 정국희 | 2011.03.13 | 871 |
67 | 나이아가라 | 정국희 | 2011.02.13 | 683 |
66 | 똥꿈 | 정국희 | 2011.02.01 | 905 |
65 | 디아스포라의 밤 | 정국희 | 2011.01.02 | 696 |
64 | 오냐 | 정국희 | 2010.12.18 | 6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