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비밀을 읽다
2015.01.02 01:51
몸 속 비밀을 읽다
사내는 필름을 들고 들어왔다
항상 그리 해온 듯 필름을 꽃고 형광불을 켰다
하얀뼈가 환히 들여다 보이는 엑스레이를
쇠막대가 짚어가며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뼈사이 숨겨진 상처를 세밀하게 들추어 내
과거에서 현재까지 설명하고
나쁜 곳은 오래도록 지적했다
낮은 첼로음같은 균형잡힌 목소리가
조근조근 살 속의 비밀을 밝혀 내자
미열 있는 가슴으로 긴장이 죄어오기 시작하고
이마 위론 어질어질 빈혈이 인다
내 근심을 엿듣고 있는 둘사이의 공간이
심한 안개주의보를 발효한다
무한세계가 소유하는 침묵 속
세상은 잠시 회전을 멈추고 필름 속으로 축소되었다
침묵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침묵을 지키는 건 얼마나 낯설은가
지리산 아흔 아홉 골을 울리고도 남을 통한
뼈 속에 있건만 귓전에서 소란스러울 뿐
목울대만 저려온다
살아있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것도 없는 몸
그날 이후 시간들이 잔인했다
마디마디 사각거리는 불협음 간신히 삼키는데
필름 빼낸 묵직한 걸음이 가만가만 나가고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3 | 바람 | 정국희 | 2012.02.03 | 780 |
82 | 80년대에서 2천년대에 이르는 시의 흐름과 변증법 | 정국희 | 2012.02.03 | 1034 |
81 | 신발 뒷굽을 자르다 | 정국희 | 2012.01.20 | 584 |
80 | 물방을 | 정국희 | 2011.12.28 | 637 |
79 | 선 | 정국희 | 2011.12.13 | 556 |
78 | 기도 | 정국희 | 2011.10.01 | 637 |
77 | 포쇄 | 정국희 | 2011.09.25 | 712 |
76 | 다음 생이 있다면 | 정국희 | 2011.09.12 | 583 |
75 | 영정사진 | 정국희 | 2011.08.31 | 571 |
74 | 가끔은 | 정국희 | 2011.08.17 | 591 |
73 | 바람아 | 정국희 | 2011.07.17 | 521 |
72 | 한국일보 창간 42주년 기념 축시 | 정국희 | 2011.06.12 | 589 |
71 | 소 | 정국희 | 2011.05.22 | 620 |
70 | 나의 아바타 | 정국희 | 2011.04.20 | 687 |
69 | 청실홍실 | 정국희 | 2011.04.07 | 730 |
68 | 등을 내준다는 것 | 정국희 | 2011.03.13 | 871 |
67 | 나이아가라 | 정국희 | 2011.02.13 | 683 |
66 | 똥꿈 | 정국희 | 2011.02.01 | 905 |
65 | 디아스포라의 밤 | 정국희 | 2011.01.02 | 696 |
64 | 오냐 | 정국희 | 2010.12.18 | 6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