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2015.01.12 13:12

정국희 조회 수:212 추천:7

이런 날은



벌건 노을
화냥년 속가슴처럼 풀어헤쳐진 날은
어느 허술한 선술집엘 가야한다
언젠가 떠난 사람
어느 쪽에서 와도 잘 보일 것 같은 창가
팔랑팔랑 치맛자락 나풀대며 오다
환하게 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잡고 앉아
그 안스러운 시절
군내나는 묵은지로 삭여야 한다

그러다가,
끝내 흉터같은 어둠 짙게 드리우면
사양하는 주인아줌마 불러 앉혀
막걸리 한 양재기 부어주고
나도 한 잔 가득 따라
피식,
헛웃음 새는 곳으로 쭉 들이켜야 한다

아무하고나 말이 통할 것 같은 이런 헤푼 날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속에 것 다 털어놓고
우리가 생이라 부르는 이 외로움을
이 빌어먹을 세상을
새똥 빠진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달래야 한다

산다는 것이
다 이런 것이 아니겠냐고
가면 안된다고
가고나면 죽고 말겠다고
그 난리를 치고도 잘 살고 있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냐고
긴 기다림에 지친 시간을
바락바락 헛손질로 쓰러뜨려야 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 신발 뒷굽을 자르다 정국희 2012.01.20 584
122 80년대에서 2천년대에 이르는 시의 흐름과 변증법 정국희 2012.02.03 1034
121 바람 정국희 2012.02.03 780
120 단전호흡 정국희 2012.02.09 732
119 나이 값 정국희 2012.02.21 717
118 마네킹 정국희 2012.02.29 743
117 계절 정국희 2012.05.30 649
116 점심과 저녁사이 정국희 2012.06.11 913
115 정국희 2012.07.20 631
114 대책 없는 수컷 정국희 2012.08.20 645
113 그 남자 정국희 2012.08.30 631
112 그늘 정국희 2012.10.04 650
111 무서운 세상 정국희 2012.10.19 555
110 눈빛 정국희 2012.10.30 566
109 향수 정국희 2012.11.30 591
108 사주팔자 정국희 2012.12.26 794
107 상현달 정국희 2013.02.11 653
106 남의 말 정국희 2013.02.18 560
105 질투 정국희 2013.03.12 484
104 가게에서 정국희 2013.04.02 56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9
전체:
88,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