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 새끼들!

2006.03.27 13:03

정찬열 조회 수:150 추천:5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가 끝났다. 이곳 센디에고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준결승 날, 한국 젊은이들이 보여주었던 응원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경기당일 운 좋게 표를 구해 세시간 가까이 운전해 경기장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경기장을 꽉 메운 4만 3천여 관중들의 응원열기는 뜨거웠다.
  경기가 시작되고 양측은 팽팽하게 0의 행진을 계속했다. 그런데 7회 초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김병현 선수가 던진 공이 홈런으로 이어지면서 4점을 내주게 되었다. 두 점을 더 내준 8회 초, 비가 심해지자 경기가 중단되었다.
  비가 쏟아지자 많은 관중이 자리를 떴다. 특히 천정 없는 관중석은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그 때, 빗줄기를 뚫고 어디선가 '대-한 민국'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국팀 덕아웃이 있는 1루 쪽 텅빈 관중석에서 30여명의 한국청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있었다. 웃통을 벗은 11명의 젊은이들의 몸에 쓴  "KOREAN PRIDE"라는 글씨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한국 젊은이들이 하나씩 둘씩 그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채워지면서 응원 숫자는 늘어만 갔다. 목소리도 점차 높아갔다. 비가 개이고 경기가 재개될 무렵엔 거대한 응원단이 형성되었고, 응원소리는 스태디엄이 떠나갈 듯했다. 태극기가 구장에 물결치고 꽹과리 소리와 함께 파란 풍선막대가 경쾌하게 움직였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응원단의 함성 "대-한 민국"이 드넓은 구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열기를 지켜보던 미국 관중들은 "Amazing! Amazing!"감탄을 연발했다.
  나는 이 감동적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저들의 가슴속에 조국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코끝이 시큰했고, 뿌리교육의 효과가 아닌가 싶어 가슴 뿌듯했다.
  게임은 한국팀의 패배로 끝났다. 허지만 진정한 승자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우리 선수들을 아낌없이 격려했다. 그 추운 날씨에 웃통을 벗고 비를 맞으며 응원을 했던 고등학생에게 춥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추웠다. 그러나 내가 옷을 입으면 한국팀이 질 것만 같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이들 때문에 한국팀이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야구 규칙상 7회까지 7점 이상 차이가 나면 콜드게임 선언을 할 수가 있지만, 비가 쏟아지거나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사정이 발생할 경우에는 6점 정도의 차이면 주심의 판단으로 콜드게임 패배를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응원하는 청년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 주심은 차마 콜드게임을 선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놀라운 저력을 세계에 각인시키며 WBC 대회는 끝났다. 우리는 애인젤스 구장에서 멕시코, 미국, 일본을 연달아 꺾었던 '애나하임 대첩'을 지켜보았고, 샌디에고 구장의 함성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번 대회의 응원 주역은 우리 2세들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하밍구'라고 발음할 만큼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말하고 대부분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젊은이들이 경기 때마다 열렬히 한국을 응원했다.  
  나는 저들이 목이 쉬도록 "대-한 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했고, 장대비를 맞으며 "오-필승 코리아"를 심장이 터지도록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목이 메었다. 그래, 대한민국은 너희들의 조국이구나. 우린 어쩔 수 없는 한 핏줄이로구나. 오, 내 새끼들!
                              <2006년 3월 29일 광주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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