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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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노비

2013.05.14 12:11

채영선 조회 수:377 추천:122

검은 노비




그곳에 검은 노비가 있었네

잃어버린 들풀의 이름으로

흔적 없이 지나가는 세월 속에

슬픔의 의미도 모르는 채로

어디에 묻었을까 이별을 그리움을

안개 흐르던 새벽 퍼 올리던 아픔을

날선 눈초리를 목 안으로 삼키며

숨차게 달려온 샛강 여울목에

찾을 길 없는 징검다리처럼, 그렇게

사라진 별이여 빛으로 있기만을

엉클어진 머리칼에 버석거리다가

마른 손가락 새로 날리는 모래알처럼

바람결에 흩어 보낸 텅 빈 웃음이여

해어진 깃발이여 거기 서 있기만을



고통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안일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말을 잃은 짐승 눈동자 속에

새파란 꽃으로 타오르고 있는지

혀가 짧아 돌아설 수 없는 석양

긴 어둠의 침묵에 가슴이 메어

눈부신 도시가 하도 어지러워서

메마른 산비탈 어디서 눈물겨운지

갈라진 밭에서 얼마나 허허로운지

딜빛에 젖은 노랫말도 잊어버린 채

눈물도 없이 스러진 들국화 꽃이여

소쩍새 잠 못 이루는 이 밤, 나는

긴 춤사위로 하늘에 올릴 제사를

적막함조차 아름다워서 어깨에 얹고

돌아올 수 있으려나 그대들은

그리운 이여, 사라져간 별들이여





시집 '사랑한다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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