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 공사를 엿보다
2006.03.17 03:02
상수도 공사를 엿보다
도로가 파 헤쳐져 차가 나갈 수 없었다
꼼짝없이 갇혀버린 그녀는 흔들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골목을 굽어보기 시작했다
가을을 익히던 감색 반팔셔츠와 조끼를 걸친 사나이들이
근육을 구워가며 스쿱로더(scoop loader)에 연신 기름칠을 해 댔다
시커먼 턱수염의 그 남자 발치에는
처음부터 주인의 눈길이라도 밟힐까봐 걱정인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따라 다니는 것 때문에
그녀는 바스락대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들은 땅을 파고 터진 상수도를 갈아 끼웠다
산더미처럼 쌓였던 진흙은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노란 삽차 뒷바퀴는 밀폐 내지는 은폐를 위해
끈적끈적한 아스팔트를 크르릉 거리며 오갔다
공사는 끝이 나고
그들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팽창해버린 수도관이 그녀의 귀에 물소리를 쏘아댔다
저 관능의 소리,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
땀내 같은 시큼한 아스팔트 냄새만
문틈으로 들어와
다시 가슴은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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