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2006.03.20 05:41

고대진 조회 수:67 추천:3

 요즘 본국에선 대통령의 아들 문제로 야단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후보만 되어도 아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모양이다. 사실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가족들이 말썽이 안되었던 일이 있던가? 아들, 장인, 동생, 처삼촌, 처조카, 하다못해 양자까지 문제를 일으키니 가족 없는 사람만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줄 수도 없고….  하기야 하나님께서도 마음대로 못하셨던 것이 자식(아담과 이브) 일이니까 대통령이라고 별 수 있었을까만 아들들 때문에 고민하다 폭삭 늙은 듯한 모습을 보니 밉다는 생각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식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상상하면서 엄하셨던 우리 아버지를 생각한다.  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유신 초기라 사회 전체가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 허가, 장학금 마련 등 유학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군대 문제가 남았다.  가까운 친척 중에 방위병으로 일년만에 군대를 마치게 할 수 있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교제비로 십 만원(지금 돈 2천불 정도)이 필요하니 마련해 달라는 내 말을 듣던 아버지의 얼굴빛이 붉은 색에서 노란 색으로 또 푸르죽죽한 이상한 색으로 변하더니 - 난 도마뱀 종류만 색깔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야 이놈아! 난 육이오 때 처자식을 남기고 총알이 핑핑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곳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전쟁도 없는 이 때 사지가 멀쩡한 녀석이 군대를 방위로 가? 이 나쁜 녀석. 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꼭 널 해병대에 보내고 말 거다…”  나중에 아버지가 말했던 총알이 핑핑 날라 다니는 곳은 최전방이 아니라 훈련소였음이 밝혀졌다. 육이오 때 아버지는 육군 중사로 제주도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이다. 좌우간 하신다면 꼭 하시는 아버지가 무서워 난 얼른 사관학교 교관요원으로 지원하여 수학을 4년 동안 가르치고 제대했다.  난 아버지들은 다 그러시는 줄 알았다. 최근 신문을 보고서야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호적도 고치고 체중을 줄이게 하기도 하고 또 야당시절 아들 고생시켰다고 웬만한 것은 다 봐주려고 하는 아버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하셨지, 우리 아버지. 고생해야 사람이 된다고 하시면서 - 아들이 사람이 덜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 또 “군대 안 갔다온 대한 민국 남자가 남자냐” 라면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셨으니. “총알이 핑핑…” 이라는 연설을 하시면서.  본국 대통령 선거철이 가까워 오면서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도 5년 뒤에는 요즘과 똑 같은 일을 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염려되어 우리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추천해본다. 자식 군대문제로 국민들을 화나게 하실 것도 아니고 또 자식들도 무서워하는 아버지니 측근들이 모두 무서워해서 법을 지키려고 할 것이니… 경제학 교수이니 경제를 갱제라고 하다가 IMF시대로 몰아넣지도 않을 것이고, 교육자이니 교육 때문에 어린아이를 외국에 보내야 하는 일도 없게 할 것이다.  노벨상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은 더욱 없을 것이고 공짜 돈 좋아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하시니 청렴 결백에도 문제가 없고. 남녀 평등이라면서 처갓집 식구들에게도 똑같이 엄하셨으니 처삼촌, 처조카가 나설 리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가신이라고는 집에 있는 헌 구두 몇 켤레뿐이니 냄새는 좀 나겠지만 문제는 안될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아버지 만한 대통령 감이 없는 듯 하다. ‘고풍’만 분다면 안될 것도 없지 않을까?  아- 문제가 조금 있기는 하다. 십 년 전 돌아가신 분께 대통령을 하시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혹 그럴 수 있더라도 당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씀하시리라.  “이 못난 녀석아.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집안 망하는 일을 맡으라니.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중 한 사람이라도 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냐? 넌 통계학을 했다면서 어찌 그렇게 자료 분석을 못하느냐? 쯧쯧… 너 아무래도 군대 한번 더 갔다와야겠다.” 난 대답할 거다. “아버지 대통령 안하셔도 되니까 지금 계신 별에서 편히 쉬세요. 요즘 지구는 여기 저기가 다 시끄럽고 답답한 일로 가득해요. 참 전 예비군도 못 가는 나이가 되었어요…” <미주 중앙일보 2002년 0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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