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176
어제:
167
전체:
487,321


시와 에세이
2003.08.07 10:54

수국(水菊) / 어머니의 미소

조회 수 1190 추천 수 12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수국(水菊) / 어머니의 미소


                                                                                        홍인숙(Grace)
   



어머니의 미소 /  홍인숙(Grace)


저기 저 바람


그리움 가득 안고 오는 바람

봄 내내 꽃망울 피우지 못한

정원의 그늘진 한숨 뒤로

수국 송이송이

소담스레 피워 올리시고

하얗게 웃고 계신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좋아하시던 꽃이 수국이었다.
아침이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앉혀놓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곱게 빗겨
갈래머리를 꽁꽁 땋아 예쁘게 묶어주시던 어머니.
그 딸아이의 손을 잡고 햇살 좋은 꽃밭에 나가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를 가꾸시고
한 곁에 소담스레 핀 수국을 가르키시며 늘 말씀하셨다.

저 꽃은 참 신기하단다.
토양과 햇빛에 따라 꽃의 색을 다르게 피우기도 하지.
한 송이씩 따로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난 왠지 저렇게 서로 옹기종이 이마를 맞대고 꽃을 피우는 수국이 참 좋구나.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그 때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든 지금, 그 음성이 자주 들리고
화원에 들를 때마다 수국 앞에서 오래 발길을 멈추곤 한다.
모든 과일이며 꽃들이 다 그렇듯이 미국의 수국도 한국에서 본 것보다 꽃잎이 크고 화려하다.
화려함에 치우쳐 가슴에 젖어오는 기분은 좀 덜하지만, 내 안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어머니의 음성을 길어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수국을 사 날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 여년을 홀로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시던 아버지께서,
연로함에서 오는 병환으로 이제는 혼자 지내실 수 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수차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씀 드릴 때마다 자식에게 신세를 안 지시려는 마음에
건강한 모습만 자랑해 보이시더니, 이제는 아버지 스스로도 자식에게 의지하셔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는지 흔쾌히 승낙을 하셔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시던 아파트의 짐을 정리하며 많은 물건들을 아낌없이 버렸는데,
한 구석의 꽃무늬가 화려한 화분에는 웬지 슬그머니 욕심이 났다.
분홍 꽃무늬와 청색 용무늬가 초록 바탕색에 화려하게 어우러진 크고 묵직한 자기(瓷器)화분이
보기에도 가치 있게 보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마침 응접실에서 탐스럽게 꽃을 피우던 분홍 수국을 그 화분에 넣으니 꽃의 빛깔과 화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수국꽃으로, 아버지는 그 꽃을 안고 있는 화분으로, 두 분의 영혼의 어우러짐이 행복하게
집안을 장식한다.
이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정리하고 자식과 함께 여생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하루하루에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지켜드릴 것이리라는 믿음이 앞선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815
88 봄 . 2 홍인숙 2004.02.17 508
87 봄 . 1 홍인숙 2004.02.17 591
86 어머니의 염원 홍인숙 2004.01.30 513
85 비를 맞으며 홍인숙 2004.01.30 646
84 시와 에세이 새해에 홍인숙 2004.01.21 1005
83 이상한 날 홍인숙 2004.01.05 593
82 거짓말 홍인숙 2004.01.05 507
81 새해 첫날 홍인숙 2004.01.05 566
80 시와 에세이 만남과 마주침 홍인숙 2003.12.26 995
79 수필 삶 돌아보기 홍인숙 2003.12.02 894
78 아버지의 단장(短杖) 홍인숙 2003.12.01 593
77 겨울 커튼 홍인숙 2003.12.01 519
76 문을 열며 홍인숙 2003.11.06 523
75 그대 누구신가요 홍인숙 2003.11.05 514
74 삶의 뒷모습 <시와 시평> 홍인숙 2003.11.05 577
73 비밀 홍인숙 2003.11.05 508
72 날개 홍인숙 2003.09.08 604
71 가을이 오려나보다 홍인숙 2003.09.08 559
» 시와 에세이 수국(水菊) / 어머니의 미소 홍인숙 2003.08.07 1190
69 당신의 꽃이 되게 하소서 홍인숙 2003.08.07 954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