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나를 숨기고

2006.05.23 06:48

노기제 조회 수:39 추천:7

06/0522                        감쪽같이 가려진 모습

                                                                        노 기제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느라 콤퓨터를 배웠다. 전문적인 일을 할 땐 바로 그 분야에서만 콤퓨터를 사용했으니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여가로 즐기는 동창 사이트나 문우들의 총집합 사이트에 들어가면  각종 기술이 부족해서 좋은 음악도, 멋진 그림도, 뛰어난 글모음도 퍼다 나르지 못해서 사이트를 꾸미는 데 일조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콤퓨터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친구가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어렵사리 우리들만의 사이트를 마련하고 동창들에게 활짝 문을 열어 초청을 한다.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안내문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면 회원이 되건만, 그 조차도 쉽게 입문하지 못하는 동창이 많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귀찮기도 하고, 회원 가입이 아주 쉬운  절차가  아닌 만큼 회원 되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신의 이모저모를 다 입력해야 드디어 회원으로서 허락을 받게 된다.
        그런 사이트를 만들려면 콤퓨터 실력도 필요하지만, 시간도 엄청 희생해야 한다. 물론 비용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릴 적 친구들을 모아  한 방에서 오순도순 얘기 할 수 있는 특권을 나눠주고 싶어서 기꺼이 희생을 자처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자리 마련해준 친구의 성의를 왜곡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이는 입을 삐죽이며 우리나이에 별난 짓들 다한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할 일도 없냐는 듯, 개인 정보를 시시콜콜 다 알리는 일에 동의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기도 한다.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창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허기사 쉽게 참여 할 수 없는 이른바 콤맹도 간혹 있다. 그래도 그들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언젠가는 콤퓨터를 정복해서 기필코 참여하리라 다짐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걸친 수많은 껍데기를 하나도 벗고 싶지 않아서 계속 살금살금 뒤꿈치 들고 들락날락 하고 있다. 들어가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이런 말 저런 말로 옛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무지 재미있다. 더러는 생소한 자기들만의 추억도 엿보게 된다. 그들의 벌거벗는 모습에 감동도 받는다.
        그러나 언제나 참여하는 친구들은 정해져 있다. 그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또는 내가 열심히 참여해서 본을 보이면 다른 친구들이 따라 참여 해 줄 것 같아 기를 쓰고 댓글을 달아 준다. 페이지 전체를 차지 할 만한 실력이 없기도 하지만 벌거벗기 싫어서 그냥 다른 친구가 장식해 논 페이지 끝에 꼬리말을 달아 응원이라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내 딴에는, 아까운 시간 희생해서 참여하는 모든 친구들 응원하며, 바람을 잡는다. 한 동창이라도 더 참가하게 하고픈 욕심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즐기면서 하는 짓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있다. 과연 내 모습은 무얼 말하는 걸까? 잘난 척 나서는 일은 아닐까.  적당히 맛보기로만 보여 줄 것이지 그렇게까지 하나도 안 거르고 다 나서 대니 들락날락만 하는  무리들에게 미움께나 받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춤 한 걸음 물러서며 본래의 누더기 다시 걸쳐 입고,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 볼 사람이 없는 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콤퓨터로 재생해서 보고들을 수 있는 클럽이다. 꼬리말도 젊은 세대 투를 흉내 내서  올린다. 오가는 대화의 주제도 지금까지의 나답지 않은 신세대 맞춤형을 택한다. 짜릿하니 젊은 피가 수혈된다.           

        완전하게 나를 숨겨 놓으니  사뭇 새로 만들어 진 나의 존재를 인식한다. 지금의 난 십대로 인식 될 수도 있다. 혹은 이십대 일 수도 있다. 그들의 언어를 따라 해 본다. 그들이 속아 준다. 쉽게 대화가 통하니 같은 또래라고 믿어 버린다. 꼬리가 길어 들키지 않으려면 너무 자주 내 모습을 보여 선 안 된다. 아주 조금씩 맛만 보여 준다. 자신만만한 그들은 자신들의 사진도 서너 장씩 올려놓는다. 모두 이쁘다. 생기발랄하다. 대부분 학생들이다. 직장 초짜들도 있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도 있다.
        매일 십여명의 사람들이 지구촌 각처에서 페이지를 장식 해 논다. 좋은 음악을 올리기도 하고, 좋은 글을 퍼다 옮겨 놓기도 한다. 또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면 그 글을 읽고 느낌을 써 주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간단히 올려놓기도 한다.  때론 인생 상담을 필요로 하는 글이 올라온다. 같은 종류의 고민을 하는 같은 또래인 척 가려운 곳 시원히 긁어 주는 도움말을 준다. 내 나이를 속이려는 생각은 없지만,  구태여 홀딱 벗고 나설 필욘, 더더구나  없다. 내가 그 또래 적에 생각했던 삶을 떠올리면 쉽게 대답이 나오게 된다.
        난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중이다. 내 나이 몇이란 숫자를  감쪽같이 숨겨 놓고, 10대와 20대, 많게는 30대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신나는 여행이다. 이왕이면 칭찬으로 격려 해주고, 아름다운 마음 가꾸는 언어만 써 주면서 신명나는 시간들을 즐기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06052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59 VALENTINE’S DAY Yong Chin Chong 2006.05.22 31
8758 UNTITLED Yong Chin Chong 2006.05.22 25
8757 LOVE LETTER Yong Chin Chong 2006.05.22 32
» 감쪽같이 나를 숨기고 노기제 2006.05.23 39
8755 권태를 벗으려 / 석정희 석정희 2006.05.23 37
8754 YOUNG WOL RU Yong Chin Chong 2006.05.23 23
8753 POMEGRANATE TREE Yong Chin Chong 2006.05.23 21
8752 GU GOK WATERFALL Yong Chin Chong 2006.05.23 27
8751 릴레이 오연희 2006.05.24 29
8750 근황(近況) 오연희 2006.05.24 22
8749 흔들리는 길 강성재 2006.05.24 28
8748 커 피 강성재 2006.05.24 45
8747 생가와 세병관을 돌아보았다 김영교 2006.05.26 30
8746 약속 유성룡 2006.05.26 25
8745 기차를 타고, 쉰살의 저 너머 강성재 2006.05.26 39
8744 YONG-MUN TEMPLE Yong Chin Chong 2006.05.26 22
8743 문경지교(刎頸之交) 유성룡 2006.05.27 26
8742 태평양을 건너서 강성재 2006.05.27 31
8741 너를 보고 있으면 유성룡 2006.05.27 32
8740 " 이주사목위원장 이병호 주교님 특별 강론 " 5/26/06 이 상옥 2006.05.29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