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비밀을 읽다

2015.01.02 03:51

정국희 조회 수:70


몸 속 비밀을 읽다




사내는 필름을 들고 들어왔다
항상 그리 해온 듯 필름을 꽃고 형광불을 켰다
하얀뼈가 환히 들여다 보이는 엑스레이를
쇠막대가 짚어가며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뼈사이 숨겨진 상처를 세밀하게 들추어 내
과거에서 현재까지 설명하고
나쁜 곳은 오래도록 지적했다
낮은 첼로음같은 균형잡힌 목소리가
조근조근 살 속의 비밀을 밝혀 내자
미열 있는 가슴으로 긴장이 죄어오기 시작하고
이마 위론 어질어질 빈혈이 인다

내 근심을 엿듣고 있는 둘사이의 공간이
심한 안개주의보를 발효한다

무한세계가 소유하는 침묵 속
세상은 잠시 회전을 멈추고 필름 속으로 축소되었다
침묵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침묵을 지키는 건 얼마나 낯설은가
지리산 아흔 아홉 골을 울리고도 남을 통한
뼈 속에 있건만 귓전에서 소란스러울 뿐
목울대만 저려온다
살아있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것도 없는 몸
그날 이후 시간들이 잔인했다

마디마디 사각거리는 불협음 간신히 삼키는데
필름  빼낸 묵직한 걸음이 가만가만 나가고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19 유봉희 2006.06.21 49
2218 물 방울의 노래 유봉희 2006.06.21 46
2217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 유봉희 2006.06.21 49
2216 그 속에도 꿈이 유봉희 2006.06.21 44
2215 천상의 노래 유봉희 2006.06.21 50
2214 몇 만년 전의 답신 유봉희 2006.06.21 45
2213 고양이에게 젖먹이는 여자 이월란 2009.09.04 57
2212 초록 만발 유봉희 2006.06.21 47
2211 작은 소리로 유봉희 2006.06.21 43
2210 죽음의 계곡에서 달떠오르다 유봉희 2006.06.21 52
2209 애쉬비 스트리트 유봉희 2006.06.21 52
2208 겨울 잠 유봉희 2006.06.21 39
2207 콜럼비아 빙하에서 유봉희 2006.06.21 54
2206 설거지를 하며 차신재 2015.01.09 70
2205 다시, 밤바다 유봉희 2006.06.21 54
2204 돌 속에 내리는 눈 | 石の中に降る雪 유봉희 2006.06.21 121
2203 <한국일보 신년시> 다시 건너는 다리 위에서 석정희 2015.01.02 98
2202 관계 유봉희 2006.06.21 40
2201 재회 유봉희 2006.06.21 63
» 몸 속 비밀을 읽다 정국희 2015.01.02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