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린 빙원,
설상차를 타고 빙하에 오른다
한참 오르다보니 갈라진 빙면에 옥색 물이 들어 있다
저것은 만년의 잠에서 깨어나는 빙하의 눈,
물 한 방울, 공기 한 줌도 순결하여
시간도 천천히 걸어다닐 때 그 모습,
저 시야에 들면 은유로만 서던 시간이
저마다 싹을 티우고
손 시리던 약속도 다시 따뜻해질 것 같은,
지금도 저런 눈으로 잠 깨는 사람 어딘가 있어
우리 별이 녹슬지 않을 것이다
빙하에 선다
칼바람 코트 속 헤집고 들어와 몸을 들어올린다
순간 발밑이 움직이는 것 같다
저 계곡을 마모하며 내려오는 만년의 발걸음,
누가 보았을까
다만 빙하가 운반한 퇴적물만이 옆에 쌓여
언덕을 오르고 있다
높은 곳에 서면 높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흰 눈 덮인 평원인 이 빙하가
저 산과 저 계곡을 조각한 손이라니!
내가 서 있는 이 벌판의 빙하도
지금 보이지 않게 손을 움직이며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녹아서
언젠가는 태평양 대서양으로 흘러 들었다가
강원도 속초 바닷가 어디쯤 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녀의 손녀,
그녀의 손등을 간지러 줄 것인가
빙하 위를 걷다가 갈라진 틈을 만난다
측면 잔재에서 돌 하나 집어 아래로 던져본다
소리가 없다, 깊이를 알 수 없다
저 안은 다만 허공이 천년의 침묵을 안고 있는지
혹은 밀월의 시간이 여린 코를 골며
만년 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긴 여로에 깊은 상처 하나 품고
치유되기 기다리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지
미궁에 햇볕 들 날 멀었을까
그러나 깨어나서
차가운 청수로
우리 별에 수혈의 바늘을 꽂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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