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기휙 (유심) 정국희 시
2015.01.04 04:37
[11월기획] 외출 / 정국희
디아스포라의 편지 : 미주 지역 교포 시인의 망향의 노래
[67호] 2013년 11월 01일 (금) 정국희 elegantcookie@hotmail.com
외출
다중국적자가 사는 도시에
등을 대고 서 있는 무궁화 실버타운
나이 한 일흔 돼 뵈는
물색 고운 각시들
네발 바퀴에 관절들 세우고
처진 등 추켜 올리고
얌전히 줄지어 나오신다
코뚜레 시간을 넘어
좋아라 아장아장 버스에 오르는 꽃들
속곳 곶감 같은 지폐 팔아
귀담아 들어 뒀던
점두룩 촉촉하다는 사분을 살까
십 년은 젊어진다는 석류를 살까
알토란 같은 청춘 객지에 다 팔아먹고
반 보퉁이 젊음이라도 사볼까
얼룩진 세월들
방창한 햇살 이고 원족을 간다
내 시의 모티브였던 친정집
작년에 엄마는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더 이상 친정집이 없습니다. 내가 먹고 자랐던 집. 따님을 달라며 젊은 청년이 와서 무릎을 꿇었던 집. 남편과 싸우면 다 일러바치지도 못하면서 마구 달려가 하룻밤 자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던 집. 이제 나는 이불 속처럼 편안했던 그 집을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통기타를 처음으로 배웠던 나의 좁은 다락방. 한밤의 음악 편지를 들으며 내 시의 원조였던 연애편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새벽을 맞던 내 다락방을 이제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니, 꽃무늬 천을 끊어다 내 원피스를 만들던 엄마의 재봉틀 소리는 정말이지 다시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리도 서운한 마음이 어디 저 혼자뿐이겠습니까. 사는 일 중 그중 제일 잘한 일이 새끼들 맘대로 뛰놀 집 한 채 장만한 일이셨다는데, 몇십 년 정든 그 아까운 집을 팔고 실버타운으로 들어갈 때 엄마 마음은 오죽이나 하셨겠습니까. 그 푸른 청춘 어느새 다 까먹고 원수 놈의 세월을 탓하며 쇠한 육신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터벅터벅 가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이들 외가집이 없어졌다고 해서 마음 아파하는 건 그저 센티멘탈한 감정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사십이 되면 괜찮을랑가, 오십이 되면 괜찮을랑가, 자식 여섯을 다 여의고도 근심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세월에 속고 산 우리 엄마.
어느 날 하늘 같은 남편 느닷없이 북망산으로 가버리자 하루아침에 늙은 과부가 돼버린 우리 엄마. 내가 가면 왔다고 울고, 떠나면 다시 못 볼까 울던 울 엄마가 이제는 먼 길 돌아돌아 마지막 종착역을 지척에 둔 실버타운에서 쉬고 계십니다.
내년 초쯤 엄마가 계시는 한국엘 갈 것입니다. 이제는 친정집이 아닌 실버타운으로 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딸이 왔다고, 딸이 좋아하는 꼬막을 얼른 사다 무쳐줄 엄마의 양푼이 더 이상 없는 산자락 아래 있는 실버타운 말입니다.
엄마가 화투패에 하루 점을 치는 화장실 딸린 원룸에서 영양사가 짠 식단 밥을 노인들과 함께 먹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연속극 줄거리를 재밌는 듯 들으며 함께 연속극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난 또 연속극처럼 울고불고 떠나올 것입니다. 엄마는 홀로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또 한세월 살아가시겠지요.
정국희
elegantcookie@hotmail.com / 미국 LA 거주. 2006년 《창조문학》 신인상,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 시집 《맨살나무 숲에서》 《신발 뒷굽을 자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밤》이 있다. 재외동포문학상(시부문) 수상. 미주시문학회 회장 역임. 현재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및 사무국장, ‘시와사람들’ 동인.
디아스포라의 편지 : 미주 지역 교포 시인의 망향의 노래
[67호] 2013년 11월 01일 (금) 정국희 elegantcookie@hotmail.com
외출
다중국적자가 사는 도시에
등을 대고 서 있는 무궁화 실버타운
나이 한 일흔 돼 뵈는
물색 고운 각시들
네발 바퀴에 관절들 세우고
처진 등 추켜 올리고
얌전히 줄지어 나오신다
코뚜레 시간을 넘어
좋아라 아장아장 버스에 오르는 꽃들
속곳 곶감 같은 지폐 팔아
귀담아 들어 뒀던
점두룩 촉촉하다는 사분을 살까
십 년은 젊어진다는 석류를 살까
알토란 같은 청춘 객지에 다 팔아먹고
반 보퉁이 젊음이라도 사볼까
얼룩진 세월들
방창한 햇살 이고 원족을 간다
내 시의 모티브였던 친정집
작년에 엄마는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더 이상 친정집이 없습니다. 내가 먹고 자랐던 집. 따님을 달라며 젊은 청년이 와서 무릎을 꿇었던 집. 남편과 싸우면 다 일러바치지도 못하면서 마구 달려가 하룻밤 자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던 집. 이제 나는 이불 속처럼 편안했던 그 집을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통기타를 처음으로 배웠던 나의 좁은 다락방. 한밤의 음악 편지를 들으며 내 시의 원조였던 연애편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새벽을 맞던 내 다락방을 이제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니, 꽃무늬 천을 끊어다 내 원피스를 만들던 엄마의 재봉틀 소리는 정말이지 다시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리도 서운한 마음이 어디 저 혼자뿐이겠습니까. 사는 일 중 그중 제일 잘한 일이 새끼들 맘대로 뛰놀 집 한 채 장만한 일이셨다는데, 몇십 년 정든 그 아까운 집을 팔고 실버타운으로 들어갈 때 엄마 마음은 오죽이나 하셨겠습니까. 그 푸른 청춘 어느새 다 까먹고 원수 놈의 세월을 탓하며 쇠한 육신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터벅터벅 가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이들 외가집이 없어졌다고 해서 마음 아파하는 건 그저 센티멘탈한 감정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사십이 되면 괜찮을랑가, 오십이 되면 괜찮을랑가, 자식 여섯을 다 여의고도 근심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세월에 속고 산 우리 엄마.
어느 날 하늘 같은 남편 느닷없이 북망산으로 가버리자 하루아침에 늙은 과부가 돼버린 우리 엄마. 내가 가면 왔다고 울고, 떠나면 다시 못 볼까 울던 울 엄마가 이제는 먼 길 돌아돌아 마지막 종착역을 지척에 둔 실버타운에서 쉬고 계십니다.
내년 초쯤 엄마가 계시는 한국엘 갈 것입니다. 이제는 친정집이 아닌 실버타운으로 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딸이 왔다고, 딸이 좋아하는 꼬막을 얼른 사다 무쳐줄 엄마의 양푼이 더 이상 없는 산자락 아래 있는 실버타운 말입니다.
엄마가 화투패에 하루 점을 치는 화장실 딸린 원룸에서 영양사가 짠 식단 밥을 노인들과 함께 먹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연속극 줄거리를 재밌는 듯 들으며 함께 연속극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난 또 연속극처럼 울고불고 떠나올 것입니다. 엄마는 홀로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또 한세월 살아가시겠지요.
정국희
elegantcookie@hotmail.com / 미국 LA 거주. 2006년 《창조문학》 신인상,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 시집 《맨살나무 숲에서》 《신발 뒷굽을 자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밤》이 있다. 재외동포문학상(시부문) 수상. 미주시문학회 회장 역임. 현재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및 사무국장, ‘시와사람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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