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은 어디까지
2007.07.03 05:57
‘게놈’은 어디까지 “문학세계” 2004
‘게놈’ 연구는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 2000년의 일이다. 인간 유전 인자 ‘게놈(genome)’을 완전 해독했다는 연구 결과가 지상에 크게 발표 됐다. 확실히 대서특필 할 만 한 획기적인 발견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제거, 추가, 혹은 수정하여 난병을 예방하고, 또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불치병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내 한 친구는 종말론을 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세가 왔는데, 말세가 왔어...”하면서다. 그 말이 나는 진저리치도록 듣기가 싫었다. 더욱이 그녀의 손자 손녀가 막 태어났는데, 어쩌면 그런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의도든, 원폭으로 인한 인류자멸이든 이 순간만은 그 말세론을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역정을 내며 반박했다. 종교인은 죽은 후의 세상을 꿈꾼다. 이 말세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기적이다. 그 말세에서 자기만은 살아남는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게놈’을 분석 규명한 한 생명 공학자가 무신론자에서 독실한 종교인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너무나 오묘한 인체의 섭리에 구름 위의 딴 분의 존재를 믿게 된 것이겠지. 그렇게 믿는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이것을 넘어서 어떤 사람들은 ‘게놈’연구 개발은 생명체를 만든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반대들 한다.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신이 있어서 감사한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한편 ‘게놈’을 찾아냈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반역자들일까. 글쎄!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더 살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쁠 것이다. 눈으로 보여야만 보이는 사람들이기에 말이다.
이 ‘게놈’ 발견에, 나는 나대로의 기돌(奇突)한 상상을 하며 혼자 낄 낄 웃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오렌지카운티 월남타운에 들린 일이 있다. 이곳은 한국 타운 분위기와 전연 달랐다. 긴 전쟁을 겪은 사람들 같지 않게 유유히 편안하게 시장 안을 거닐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민족성이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람은 어떤가. 시장에 가면 차라리 전쟁이다. 이런 우리에게 ‘게놈’ 치료를 한다면 하고 생각했다. 민족성을 고쳐놓는 치료 말이다. 시장 카트를 밀어붙이며 비좁은 사이를 앞질려 가려다 어떤 여인이 카트로 내 발뒤꿈치를 덮친다. 그러면 나는 독사 같은 눈으로 째려보지 않고 오히려 “서두는 일이 있으시군요. 어서 먼저 가세요” 하고 바다 같은 도량으로 대한다. 게놈치료 없이는 백 번 죽었다 살아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겨드랑이가 근질근질한 일이다.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 수 있는 게놈치료, 즉 느슨한 인자와 바꿔놓는 바꿔치기 치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재미있어서 또 낄 낄 웃는다.
그러나 이런 바꿔치기 외에 또 치료가 필요한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어느 하루 나 자신을 드려다 보고 있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내 마음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노 없이 띄운 마음이다. 보고만 있으니 이리저리 멋대로 흐른다. 마음속의 까만 먹물을 흘리면서다. 아연실색 당황한다. 노를 다시 잡을까.
그러나 그대로 놔두고 본다. 억눌러 두었던 욕심이 삐져 나온다. 남의 마음도 점친다. 좋은 쪽이 아니다. 또 노여움도 있다. 그것들은 벌써 잊어버렸어야 할 일들인데 그대로 밑에 깔려 있다.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이 넓은 세상이 좁아 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자기 자살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또 생각한다. 무형의 암세포가 들어있는 자루다. 그 암은 자루를 찢기 전에는 없앨 수가 없다. 항암 주사를 맞는다. 그러나 주사는 잘 듣지 않는 것이 상례라서, 희망을 갖고 바늘을 찔러야 한다. 자꾸 찔러야 한다. 그 자루가 터질 때까지다. 그 주사가 게놈치료일까 하고 생각한다. 아니다. 인간의 본능과 유전인자 ‘게놈’은 다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길들여야 할 야생마다. 종교인은 그 속의 말씀으로, 그렇지 않는 사람은 양심으로 마음을 길들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공상을 잠깐 해 본다. 내가 만약 게놈치료로 새 인간이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 ‘톨스토이’? ‘모짤뜨’? 또는 화가 ‘르노알’일까.
다 아니다. 이대로의 나라도 할 수 없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손도손 탈없이 살면 되겠다. ‘게놈’의 세계는 꿈, 그래서 나는 오늘을 묵묵히 양심 것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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