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달력
2007.01.04 15:43
마지막 한 개 남은 깍두기를 집어든다
밥상 위 늘 올려지던 그릇에
깍두기 스물 여덟개 혹은 설흔
설흔 하나 아슬하게 찰랑이던 세월
정교히 썰어진 마지막 살점 하나가
저무는 하늘 노을처럼 붉게 푹 익어서
익숙해진 입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깍두기 속에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누이의 한쪽 가슴이 사라지고
어머니는 칠순이 되시고
보글보글 익던 깍두기 속에서 여름이 가고 낙엽이 지고
잎 떨군 나무처럼 소식 까칠했던 그대
그리움 한 계절의 무게로
물컹물컹 시큼하여 눈물나고
어느새 눈물들이 깨져 눈발로 흩날리는 시간
살찐 무 열 댓개를 샀다
하나로 응축된 단단한 세월을
깍뚝 깍뚝 썬다
흠없이 하얗게 분리되는 심심한 살들
어머니가 지난해와 같은 양념으로
버무려 꾹꾹 눌러담글 무렵
반쪽남은 깍두기 들고 뉴욕 전화를 받는다
눈 멀어가는 한 사람의 글 공부 이제 막 끝냈다는 곽 시인님
시인의 목소리가 안개로 채워진다
고막이 뿌옇게 길을 잃고 있을 때
한 입에 꽉 깨물릴 남은 시간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새 상에 올려질 365개의 깍두기
살을 파고드는 소금 켜켜이 섞어
그 가슴가슴에 때마다 싹 틔울 갖가지 씨들
다시 글 박힐 것이다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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