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놀았다

2010.08.10 07:11

이영숙 조회 수:44 추천:2

  꼭, 눈감았다.  모두 뒤로하고, 다 덮어두었다.  어차피 끙끙거린다고 되는 것도 없었다.  컴퓨터를 열어도 떠오르는 글귀는 하나도 없고 머리를 짜보아도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펑펑 노는 게 훨씬 났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가끔은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문맥이 있기도 했다.  이것을 글로 만들면 충분히 하나의 글이 되리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전 같으면 다듬고 만들고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멋지게 글로 만들어 펼쳐보였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도 가지고 글을 만들려 씨름하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까.  지금은 떠오르는 시상마저 그냥 묻어버렸다.  귀찮아서다.  

  남달리 뭔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배우는 내 모습도 없애버렸다.  배우고 있던 것을 다 뒷전에 두고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틈을 쪼개고, 초를 아껴서 배우고 익히던 것들이다.  그것에 나에게 필요 한가 아닌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저 배우는 게 좋아 열심히 익히고 배우던 것들을 멀리했다.  내가 그런 것을 배운다고 남들은 물론 딸아이마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들을 얼마나 즐겁고 흥미롭게 배웠던가.  배움은 즐거운 것이다.  아는 것은, 지식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쓰일 수 있다.  신은 언제나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필요한 시간에 다다라 ‘그때 그것을 우습게 여겼는데 이제 필요할 줄이야....’라는 후회는 없어야 하겠기에.  아니,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배우는 것은 즐거운 것이기에 배웠다.  그렇게 열심을 내며 정성을 쏟아 배우던 그런 것들마저 멀리 두었다.

  시간을 아끼던 나였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돈을 낭비함보다 더 나쁘다고 딸에게 가르치며 살아왔다.  분초를 아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딸을 가르치리라 생각했다.  언젠가 몸이 많이 아파 며칠을 계속해서 누워있어야 했을 때가 있었다.  계속 누워있다 문득 염려가 되었다.  이러다 습관이 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에 아픈 가운데서도 가능하면 움직이며 게으름에 몸이 길들여지지 않게 하려 애썼다.  어쩌다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어떤 죄의식 같은 것이 나를 억누르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지금은 아프지도 않 다.  누워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시간을 허비함이 억울하지도 않다.  이래선 안 된다는 죄의식도 전혀 없다.  그냥 문 꼭꼭 잠그고 칩거했다.  더 이상한 건 마음이 우울한 것도 아니다.  물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답답하다면 답답할 그런 상황이기는 하다.  바라고 원하던 것이 다 된 것 같았는데 그냥 사라진 일도 있었다.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음도 이상하다.  도리어 마음이 편안하고 불안함이나 슬픔이나 걱정도 없다.  모든 것을 그냥 덮어두고 싶은 것뿐이었다.  염려도 묻어두고, 걱정도 뒤로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금은 자고 싶었다.  그저 편안했다.

  이제 일어나려 한다.  때가 된듯하다.  더 이상 길어지면 일어나는 법을 잊어버릴까 염려된다.  기지개를 켜고 깊은 동면에서 깨어나려 한다.  푹 쉬었다.  일어나 움직일 힘이 있을 듯하다.  실컷 놀았으니 이젠 움직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