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섬의 물돌이

2007.01.31 15:31

박봉진 조회 수:56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 관목들의 밑둥치가 잠겨있는 두어 길 물밑에서 물이 솟고 있다고 했다. 분수처럼 치솟는 것이 아니라 숲을 이룬 사방 나무뿌리들 사이에서 부글부글 팥죽 끓듯 솟는 모양이었다. 그 물은 바닷물과 맞닿아있다고는 하지만 거기서는 그냥 강물인 듯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유속 때문일까. 사람과 사람간의 얽힌 사연들도 따라 흐르고 있었다. 튜브 타기는 거기에서부터였다. 대소쿠리처럼 생긴 내해 건너편, 그러니까 우리들이 당초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물돌이 뿐이겠는가.



우리 일행 여섯 사람은 멕시코시티에서 있었던 문학단체 행사 참관을 마친 후 귀로에 세계적인 휴양도시 칸쿤에 들렸다. 칸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끝자락쯤인 카리브해에 닿아있다. 그리고 여자의 섬이라고 불리는 무헤레스(Mujueres)섬은 칸쿤에서 약 5마일쯤에 있다. 거기서는 튜브타기가 단연 인기 종목이었다. 고무보트를 타고 협곡 급류를 따라 빠르게 내려가는 Float Trip과는 달랐다. 두 사람이 함께 타는 튜브와 일인용 튜브를 골라잡아 타고 약 한 시간 반 남짓 유유자적하면서 흐르는 물살 따라 떠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튜브 타기는 출발점에서부터 난감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경우도 결코 쉽게 되어지지는 않았으리라. 일행 중 두 팀이 먼저 두 사람씩 타는 튜브를 잡아타버리니 남은 사람은 나와 그녀 둘뿐이었다. 그 전엔 그녀를 알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 한두 번 어색한 글이 오갔었다. 대화를 틀지 않았던 사이라서 더욱 그랬다. 하는 수 없었다. 각자 자동차 바퀴 같은 일인용 튜브를 잡고 라이프 가드(Life Guard)역을 맡기로 했다. 그랬는데 얼 듯 내 곁눈에 들어온 그녀는 둥근 튜브안의 물밑으로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다급했다. 간신히 튜브위로 그녀를 이끌었다. 일단 위기는 모면했지만 발끝이 닿지 않는 깊은 물속에서 그녀를 튜브위로 앉힐 수는 없었다. 오랜만의 수영이지만 안간힘을 다해 넙적 바위까지는 밀고 가야만 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외나무다리에서처럼 기이한 인연이 엮어질 줄을 누가 알았을까.



지난 2002년도에 내게 한국정부 출원 처에서 재외동포문학 대상이 주어졌었다. 그 작품은 아내의 친구 차여사의 삶에 대한 글이었다. 그녀는 졸지에 남편을 여의었다. 뼛속까지 아린 인생의 설 한기를 온몸으로 격어 내어야만 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자신은 신장이 망가지면서도 두 딸을 간호사로, 공인회계사로 키워냈고 본인도 성숙한 인품의 소유자로 살고 있다. 동해(凍害)를 입긴 해도 잎새 갈이를 잘 해낸 표본이었다. 짙은 녹색을 일으켜 세우는 초여름 활엽수의 모습으로 거듭났던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주제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닿았던 모양이었다.



그 작품을 쓸 때 나는 오랫동안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아왔던 것과 궁금한 것은 문답형식으로 자료를 얻었고, 작고한 남편 차선생의 이름이 선명한 유필 ‘마지막 일기’란 원문도 건네받아 지난날의 가족사로 넣기로 했다. 내 작품은 네 개의 대 단락으로 구성했고 그 유필은 대 단락 두 번째에 넣었다. 물론 그 유필은 내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창작 관행에 따라 귀한 손님을 대하 듯 독방을 주었고 글의 앞뒤 쪽에 따옴표를 붙이고 예의를 갖추었다. 그랬었는데 그녀는 내게 보내온 글에서 그 유필에 대한 금시초문의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인즉 자기가 그것을 썼다고 했다.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너무 절절해서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그 유필을 써서 신문에 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남의 글을 취해 자기 이름으로 내면 표절 시비가 따르는데 반대로 자기가 쓴 글을 함부로 남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거꾸로 된 것이지만 둘 다 같은 맥락이 아닌가.



작가는 자기 이름의 글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고 권리주장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그녀는 그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지 않는가. 어쨌거나 그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동기가 선했다하더라도 그런 형태의 글은 발표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 글을 곧이곧대로 읽을 독자들을 희롱해서는 안 되거니와 그로 인해 선의의 인용 사례도 생겨나지 않았는가. 또한 그녀가 그리했다는 것은 자신이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신문에 공고까지 한 셈이다. 어차피 나완 무관한 삼자적 일이며 내겐 잘못된 것이 없음도 분명한데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람.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을 경우가 생길 조짐이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되기에 대응하지 않았다. 굳이 하나를 더한다면 그녀가 남의 이름으로 썼다는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 죽은 남자가 화자인 유서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쓴 것은 격식을 갖춰 작품으로 쓴 것이다. 죽은 사람의 말은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산 사람 미망인이 화자가 되어 시종일관 글을 풀어나간다. 작품을 작품으로 읽을 정도의 사람이면 문장 구성이 한 눈에 훤히 들어오련만,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카더라” 전언만으로 이상한 선입견을 갖는지 모르겠다. 이성간의 스캔들에 얹힌 사람은 결백해도 누명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나도 그 일로인해 청문회 비슷한 과정까지 겪으면서 해명은 되었지만 그 씁쓸한 뒷맛이라니-.



튜브는 그녀를 안전하게 앉히고 물살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로 힘들었던 지난날의 엉뚱한 선입견들도 흐르는 물살에 아주 씻겨졌으면 싶었다. “이제부터는 손바닥으로 좌우의 물을 살살 밀어주며 방향만 잡아주면 돼요.” 나는 그렇게 당부해놓고 부리나케 먼저 간 사람들을 찾아 헤엄쳐 나갔다. 여태 그녀는 그녀의 길로 갔고, 나는 나의 길로 갔듯이. 누가 말했었나? “글은 물 흐르듯 써라”고. 흐르는 물도 물 나름이지 싶었다. 유유히 흐르는 물이 때로는 빙빙 돌다가 치솟기도 하고 굽이쳐 내리기도 하며 물도 감칠맛 나게 흘러야지. 여기 물살처럼 밋밋하게 흘러서야 어디 글맛이 나질까.



한참 앞서 내려온 나는 뒤돌아보고 또 놀랐다. 어찌된 영문이었을까. 그녀의 튜브는 강심으로 곧장 떠내려 오지 못하고 엉뚱하게 한쪽 기슭 쪽에서 맴돌고 있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였다. 튜브를 팔짱에 낀 채 안간힘을 써서 그녀에게로 헤엄쳐가려고 했지만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지 않았다. 튜브의 부력 때문에 물살을 역류해서는 나가지지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헤엄쳐가야만 했다. 그녀가 타고 있는 튜브에 손을 얹고 두 발만 쭉쭉 뻗어주면 곧장 바른 물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을. 그마져도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나 보다.



물은 끊임없이 물살로 흐르고 있다. 아옹다옹 사람들도 예나 지금이나 따라 흐를 수밖에.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이어서 그랬을까. 망망한 물위에 그것도 무슨 치레 같은 겉옷은 걸치지도 않았고 수영복차림의 두 사람뿐이었는데 왜 살가운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을까? 말문을 틀 양이면 지난 일과 오늘 일만 해도 할 말이 얼마나 많을 건가. 도달할 곳이 가까울수록 물살은 바삐 물 고리들을 연결해가면서 흘렀을 것이다. 우리의 처음 인연은 좀 그랬어도 보이지 않는 물속의 물살처럼 어떤 인연의 고리로 연결을 해가며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물은 언제나 제 본성대로 낮은 자리를 향해 흘러갔으리라. 그것이 물의 물돌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