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켓 가던 날

2015.06.03 08:59

이주희 조회 수:1644

마켓 가던 날 / 이주희

 

주차하려는 자리 웅크린 지뢰

빈 병에 숨어 있다

다른 곳에 차대고 내려서자마자

운동화 밑창 잡고 늘어지는 껌

아무렇게 벗어던진 껌 싸게 모양

널려 있는 쇼핑카트 하나 밀며 간다

스치는 옷깃 인연

안녕하세요

다른 곳만 쳐다본다

순대 포장한 것 없나요

고개만 젓는 묵언수행 아줌마

하마터면 쌀 사는 것 잊을 뻔했네

되돌아가 깨까지 챙겨 담아 계산대 앞에 서서

도마뱀 꼬리 끊듯 짧은 줄 만드는데

방금 돌아선 아가씨 뒤통수에

어따대고 반말이야

세게 여닫는 돈 통 소리

빨리 저녁 지어야지

서둘러 차 안에 옮겨 넣는 찬거리

임종 보러 가시나

급정지 바퀴 비명

미안한 꾸벅도 없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두 낯익은 모습

나도 전에 다 해 본 것 같다

잊어버려서 그렇지'


-소리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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