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섬 혹은 산
2007.02.08 13:27
1. 섬인가 산인가
이곳은 무엇인가 느낌이 수상하다.
4월의 울릉도에 첫발을 디딘 느낌은 그랬다. 따지고 보면 수상쩍다는 눈치는 당연한 것이다. 울릉도는 섬島인가 아니면 산山인가. 울릉도는 섬이면서 동시에 산이다. 아니, 산이면서 섬이 된다. 이 섬은 탄생부터 이상했다.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더 오래 된 어느 날 일 것이다.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 동해바다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바다를 박차고 나온 산이, 섬이 되었다.
아득한 바다 가운데쯤에서 급히 솟구쳐 오르다 보니 바닷물에 닿은 울릉도의 허리는 온통 절벽이다.
‘허리’라... 그 말도 맞는 것이 이 섬 산의 최고봉인 984미터는 성인봉이 물 위쪽으로 튀어나온 높이를 말한다. 그러나 시퍼런 바다 밑으로 갈아 앉아 있는 허리 아래가, 바다 바닥에서 보면 더 높다. 그러므로 바다 속에서 보나, 물 위에서 보나 울릉도는 산이 된다.
지구별 땅 속 깊은 곳에 끓고 있는 용암이, 그 주체 할 수 없는 힘으로 터트려 버린 화산섬 혹은 산.
그렇게 원래 없었던 산이 바다 가운데 생겼다.
새끼도 하나 낳아 독도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한없이 시간이 흘렀다. 용암이 식고 나니 사람만 빼 놓고 해류에 밀린 온갖 동, 식물들이 청정 바람 속에 자라기 시작했다. 심해선 밖, 점 하나 같은 이 산은 그렇게 스스로 울창해져 갔고 신비로워 졌다.
그러나 땅이라면 한 많은 우리 조상의 욕심이 어디 이런 곳을 그냥 둘까. 사람들이 이주하고 나라를 세웠다. 아예 독립 국가를 세웠다. 우산국于山國이라는 나라다. 나라 이전에도 이름은 있었다. 우릉도芋陵島 혹은 무릉武陵이라는 이름이다. 갈 수 없는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따온 이름을, 사람들은 이 섬에 붙였다. 울릉도는 이미 예사스러운 산이 아니었다.
그랬다. 나는 울릉도 섬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산을 찾아 모진 배 멀미에 시달리며 이곳에 온 것이다. 여기 온 목적은 산꼭대기를 오르기 위해서다. 성스러운 봉우리라는 산의 꼭지 점은 그래서 성인봉聖人峰이다. 예수나 석가 같은 분들에게 붙일, 성스런 성인을 만나는 통과의례는 가혹했다. 하긴 음풍농월 吟風弄月을 즐기는 미련한 중생이 만나자고 한들 쉽게 만나 줄 성인이 있겠는가.
산행이 힘들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울릉산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폭풍주의보로 출발부터 삐걱거리더니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배가 난바다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질 것이며 폭풍주의보가 해제 될 것이라는, 어제의 과학적 기상통보는 틀렸다. 오히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절기節氣가 정확했다. 오늘은 당연히 비가 와야 하고 그래서 오늘의 이름이 곡우穀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 진다는 곡우가 지나면 이 봄이 끝나고 여름立夏이 시작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비가 오락가락해야 했고, 그 만큼 울릉도 가는 길도 수상했다.
항구 찾아가는 길의 벚꽃은 가는 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하염없이 흩날리고, 대신 붉은 영산홍 꽃망울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영롱하게 달려 있다. 그렇게 도착한 여객부두에는, 위풍당당한 ‘썬플라워’호가 모진 바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의 시절은 속절없이 가고 이제 여름의 선플라워 즉, 해바라기 계절이 온다는 말이겠다.
물론 울릉도 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계절 울릉도를 겪어 봤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등 푸른 젊은 시절, 뽕짝 동백아가씨를 비아냥 섞인 건방 속에 들었다면, 지금은 그 영탄조 가사가 절절하게 닿는 까닭이다. 과제물로 나왔기에 하품을 참아 가며 읽었던 장그르니에의 ‘섬’이, 지금은 보석처럼 생각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2. 동백꽃
폭풍이 지난 땅에도 샘은 솟는다는 말이 있듯, 잠수함이 되지 않은 썬플라워호는 우리를 7시쯤 울릉도 도동항에 내려 주었다. 울릉산의 허리, 도동 땅을 밟을 때의 느낌은 아주 각별했다. 전등불이 환한 주차장엔 산악 도반인 토박이 후배가 봉고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바다가 고요하면 절대 배 멀미는 없다고 했다. 독도 박물관 학예사가 토요일임에도 5시까지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다고 말한다.
내 죄가 아니다. 독한 통과 의례를 요구한 하늘 탓이다.
울릉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마음이 설레이는 탓인지, 배 멀미가 거짓말처럼 없어진 것인지, 부지런하게도 아침 5시 30분에 깨운다. 착한 비님은 그때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문밖을 나서니 공기가 더 없이 청량하다.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섰다. 가파른 대원사 코스로 입산을 했다. 문경에서 온 산들모임의 많은 사람들이 앞서고 있었다.
좋은 글을 읽은 기억이 났고, 그가 문경사람 임을 기억해 냈다. 다리 쉼을 할 때 그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했다. 서로 글로만 인사를 한 처지지만 산이라는 화두 하나로도 반가운 해후였다. 쉼을 할 때 그가 따라준 마가목주 한잔의 향기가 싱그롭다.
등산로에는 동백꽃이 제철이었고 지천이었다.
제 몴을 다한 꽃은 대궁 채 떨어져 붉은 혈흔 같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도 많다. 한철 살다 갈 세상을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실눈 뜨고 살며시 내다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눈뜸과 낙화는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꽃그늘에서 보이는 신록이 청정하다. 정말 초록은 꽃보다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도를 올리며 언 듯 바다가 보인다. 어제의 광란은 본 면목이 아니라는 듯 고요한 바다다. 비님이 오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일망무제 질펀한 바다가 보일 터였다. 해발 500미터쯤 오르니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눈이 많은 고장이지만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았다고 했다. 그 눈이 녹지 않아 흡사 히말라야 빙하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작은 크레바스도 있다.
눈 아래엔 연초록 세상이더니 이곳은 설국雪國이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는 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 사이로 새순이 움트고 있다. 초록이 꽃보다 이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꽃을 여성의 생식기로 본다. 물론 나 이전에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관능적 관점에서의 분석이다.
내 **는 조개입니다/ 핑크빛의 부드럽고 둥근 조개/ 열렸다 닫혔다, 다시 닫혔다 열리는/ 내 **는 꽃입니다/ 이상한 튤립 꽃 이죠/ 가운데는 날카롭고 깊숙하죠/ 미묘한 향기가 나고/ 꽃잎은 부드러우면서도 튼튼하지요.
-이부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중에서.
**으로 표시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런 뱃장이 내게는 없다.
최영미라는 시인의 ‘컴퓨터와 *를 하고 싶다’라는 직설적 시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이부 엔슬러나 최영미 시인의 원초적 본능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관능 뒤에 숨어 있는 생식을, 그 거룩한 윤회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수태를 위하여 연지 곤지 찍고, 짙은 향기로 꿀벌이며 나비들을 유혹하는 꽃의 발칙한 도발.
깊숙이 꿀을 숨겨 놓고, 사냥꾼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끌어내는 어미로서 꽃을 생각한다.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지혜의 꽃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부지런한 벌 한 마리가 동백꽃을 기웃거린다.
3. 벌 혹은 벌래
벌은 다른 말로 벌레라고도 부른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아니, 틀린 말이다. 벌레만도 못한 것이 인간일 수도 있다.
기원 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그리스의 수학자 파푸스라는 사람이 인간보다 벌이 훌륭하다고 말한 인간이다. 그가 쓴 수학집성數學集成)이라는 글에 '꿀벌의 집에 관한 이야기' 라는 대목이 있다.
"꿀벌은 천국으로부터 꿀이라는 신들의 음식 일부를 얻어서 인류에게 날라다 준다. 이처럼 귀한 꿀을 저장하기에 알맞은 집을 벌들은 만들었다. 이 그릇은 불순물이 끼지 못하도록, 서로 빈틈없이 연이어 있는 형태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동일한 점을 둘러싼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의 세 가지 밖에는 없다. 꿀벌들은 본능적으로 최대의 각(꼭지점)을 가진 정육각형을 택했지만, 이 형태는 다른 둘보다 훨씬 많은 꿀을 채울 수가 있다."
벌이 꿀을 저장하면서 살아가는 벌집을 살펴보면 정육각형이다. 왜 하필이면 정육각형의 도형을 선택하였을까?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수사를 뒤로하더라도 벌집 흉내를 낸 것이 첨단 기술의 집합인 비행기 날개 제조법이다. 그만큼 구조학적으로 안전하고 표면적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발 더 나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유기적, 사회적 형태를 엿 볼 수도 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전 생겨 난 이런 곤충들의 지혜를 벌레라고 무시 할 것인가.
비긋기를 기다리는 동백꽃 그늘에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회적 생활을 하는 지혜로운 벌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식물이다. 꽃이다. 바삐 날개 짓을 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곤충을, 제 멋대로 부려먹는 식물은 또 뭔가. 한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으면서도 온갖 곤충들을 이용해 수태를 하는 꽃. 혹은 나무들.
하잘 것 없이 보이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하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 눈으로 본다.
마치, 사람이 근친결혼을 회피하는 것처럼 꽃들도 자신의 꽃가루로 수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건, 코넬 대학의 June Nasrallah 박사의 말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불리한 열성유전자가 짝지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근친교배는 유해한 것이다. 그걸 풀어 낸 인간의 짧은 표현은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향기로, 색으로, 꿀로 유혹하는 방법을 써서 한자리에 있으면서 근친교배를 피하는 꽃의 지혜. 식물의 슬기. 무섭다.
그렇게 식물들이 꽃을 한철 피워 바라는 것이 수태受胎다. 임신이 되면, 식물은 미련 없이 아름다운 꽃잎을 떨군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의 비밀이다. 그 결과치가 열매고 다른 말로 새끼다. 끝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사실적 윤회다. 누가 감히 식물을 열등하다고 말하는가. 어느 현자 있어 식물은 감성이 없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가.
4. 세 가지 바다
어자피 산행은 일행이 많거나 적거나 홀로다.
손잡고 걸어가기에는 가파른 길이기에 혼자다. 그런 산은 생각 할 시간을 준다. 그런 쓸데없는 상념 속에 다리품을 판다. 눈 깊은 길을 헤쳐 가다 보니 끝이 있었고 성인봉 정상에 이르렀다. 갑자기 정상을 오르겠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꼭 정상에 올라야 된다는 절박한 이유가 없는 바에 사, 그냥 정상을 바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일행들이 빨리 올라와 증명사진을 찍자고 재촉한다. 애써 사양했다. ‘성인’의 정수리를 어찌 감히 중생이 밟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손사래를 쳤다. 정작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리라.
다시 한 번 배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한 사흘 죽치며 생각을 다듬을 것이다. 정상을 오르면 다시 온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희석 될 소지가 많다. 정상을 미련처럼 남겨 둘 이유가 거기 있다.
가파른 울릉 산이 갖기엔 거짓말 같은 너른 나리분지로 내려 온 후, 토종 산나물에 동동주로 하산 주를 마셨다. 나리분지는 여린 초록빛 세상이었다. 알 수 없는 세상 속이었다. 자꾸 마셔도 그래도 알 수 없는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뱃길은 고요한 바다 덕에 멀미도 없었다. 배 안에서 문경 땅 악우岳友 김규천씨와 마주 앉았다. 이미 그는 반쯤 취한 상태였다. 그 역시 채워도 목마른 그 무엇 때문이었을까. 씻지도 않은 울릉도 산나물을 안주로 그와 맑은 소주를 나눴다.
4월, 울릉산은 세 가지 바다가 있다.
성인봉이 허리를 담고 시시각각, 초록으로, 연두 빛으로, 급기야 검푸름으로 변하는 질펀한 동해바다가 첫 번째다. 또 하나는 경외 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역사役事를 보고, 더듬으며 한 생각에 빠지는 상념의 바다이다. 마지막은 무슨 바다일까. 윤회를 거듭했고 하고 있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앙증맞은 연초록 빛 수상한 숲바다가 그것이다.
이곳은 무엇인가 느낌이 수상하다.
4월의 울릉도에 첫발을 디딘 느낌은 그랬다. 따지고 보면 수상쩍다는 눈치는 당연한 것이다. 울릉도는 섬島인가 아니면 산山인가. 울릉도는 섬이면서 동시에 산이다. 아니, 산이면서 섬이 된다. 이 섬은 탄생부터 이상했다.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더 오래 된 어느 날 일 것이다.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 동해바다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바다를 박차고 나온 산이, 섬이 되었다.
아득한 바다 가운데쯤에서 급히 솟구쳐 오르다 보니 바닷물에 닿은 울릉도의 허리는 온통 절벽이다.
‘허리’라... 그 말도 맞는 것이 이 섬 산의 최고봉인 984미터는 성인봉이 물 위쪽으로 튀어나온 높이를 말한다. 그러나 시퍼런 바다 밑으로 갈아 앉아 있는 허리 아래가, 바다 바닥에서 보면 더 높다. 그러므로 바다 속에서 보나, 물 위에서 보나 울릉도는 산이 된다.
지구별 땅 속 깊은 곳에 끓고 있는 용암이, 그 주체 할 수 없는 힘으로 터트려 버린 화산섬 혹은 산.
그렇게 원래 없었던 산이 바다 가운데 생겼다.
새끼도 하나 낳아 독도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한없이 시간이 흘렀다. 용암이 식고 나니 사람만 빼 놓고 해류에 밀린 온갖 동, 식물들이 청정 바람 속에 자라기 시작했다. 심해선 밖, 점 하나 같은 이 산은 그렇게 스스로 울창해져 갔고 신비로워 졌다.
그러나 땅이라면 한 많은 우리 조상의 욕심이 어디 이런 곳을 그냥 둘까. 사람들이 이주하고 나라를 세웠다. 아예 독립 국가를 세웠다. 우산국于山國이라는 나라다. 나라 이전에도 이름은 있었다. 우릉도芋陵島 혹은 무릉武陵이라는 이름이다. 갈 수 없는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따온 이름을, 사람들은 이 섬에 붙였다. 울릉도는 이미 예사스러운 산이 아니었다.
그랬다. 나는 울릉도 섬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산을 찾아 모진 배 멀미에 시달리며 이곳에 온 것이다. 여기 온 목적은 산꼭대기를 오르기 위해서다. 성스러운 봉우리라는 산의 꼭지 점은 그래서 성인봉聖人峰이다. 예수나 석가 같은 분들에게 붙일, 성스런 성인을 만나는 통과의례는 가혹했다. 하긴 음풍농월 吟風弄月을 즐기는 미련한 중생이 만나자고 한들 쉽게 만나 줄 성인이 있겠는가.
산행이 힘들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울릉산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폭풍주의보로 출발부터 삐걱거리더니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배가 난바다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질 것이며 폭풍주의보가 해제 될 것이라는, 어제의 과학적 기상통보는 틀렸다. 오히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절기節氣가 정확했다. 오늘은 당연히 비가 와야 하고 그래서 오늘의 이름이 곡우穀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 진다는 곡우가 지나면 이 봄이 끝나고 여름立夏이 시작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비가 오락가락해야 했고, 그 만큼 울릉도 가는 길도 수상했다.
항구 찾아가는 길의 벚꽃은 가는 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하염없이 흩날리고, 대신 붉은 영산홍 꽃망울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영롱하게 달려 있다. 그렇게 도착한 여객부두에는, 위풍당당한 ‘썬플라워’호가 모진 바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의 시절은 속절없이 가고 이제 여름의 선플라워 즉, 해바라기 계절이 온다는 말이겠다.
물론 울릉도 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계절 울릉도를 겪어 봤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등 푸른 젊은 시절, 뽕짝 동백아가씨를 비아냥 섞인 건방 속에 들었다면, 지금은 그 영탄조 가사가 절절하게 닿는 까닭이다. 과제물로 나왔기에 하품을 참아 가며 읽었던 장그르니에의 ‘섬’이, 지금은 보석처럼 생각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2. 동백꽃
폭풍이 지난 땅에도 샘은 솟는다는 말이 있듯, 잠수함이 되지 않은 썬플라워호는 우리를 7시쯤 울릉도 도동항에 내려 주었다. 울릉산의 허리, 도동 땅을 밟을 때의 느낌은 아주 각별했다. 전등불이 환한 주차장엔 산악 도반인 토박이 후배가 봉고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바다가 고요하면 절대 배 멀미는 없다고 했다. 독도 박물관 학예사가 토요일임에도 5시까지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다고 말한다.
내 죄가 아니다. 독한 통과 의례를 요구한 하늘 탓이다.
울릉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마음이 설레이는 탓인지, 배 멀미가 거짓말처럼 없어진 것인지, 부지런하게도 아침 5시 30분에 깨운다. 착한 비님은 그때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문밖을 나서니 공기가 더 없이 청량하다.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섰다. 가파른 대원사 코스로 입산을 했다. 문경에서 온 산들모임의 많은 사람들이 앞서고 있었다.
좋은 글을 읽은 기억이 났고, 그가 문경사람 임을 기억해 냈다. 다리 쉼을 할 때 그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했다. 서로 글로만 인사를 한 처지지만 산이라는 화두 하나로도 반가운 해후였다. 쉼을 할 때 그가 따라준 마가목주 한잔의 향기가 싱그롭다.
등산로에는 동백꽃이 제철이었고 지천이었다.
제 몴을 다한 꽃은 대궁 채 떨어져 붉은 혈흔 같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도 많다. 한철 살다 갈 세상을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실눈 뜨고 살며시 내다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눈뜸과 낙화는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꽃그늘에서 보이는 신록이 청정하다. 정말 초록은 꽃보다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도를 올리며 언 듯 바다가 보인다. 어제의 광란은 본 면목이 아니라는 듯 고요한 바다다. 비님이 오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일망무제 질펀한 바다가 보일 터였다. 해발 500미터쯤 오르니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눈이 많은 고장이지만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았다고 했다. 그 눈이 녹지 않아 흡사 히말라야 빙하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작은 크레바스도 있다.
눈 아래엔 연초록 세상이더니 이곳은 설국雪國이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는 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 사이로 새순이 움트고 있다. 초록이 꽃보다 이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꽃을 여성의 생식기로 본다. 물론 나 이전에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관능적 관점에서의 분석이다.
내 **는 조개입니다/ 핑크빛의 부드럽고 둥근 조개/ 열렸다 닫혔다, 다시 닫혔다 열리는/ 내 **는 꽃입니다/ 이상한 튤립 꽃 이죠/ 가운데는 날카롭고 깊숙하죠/ 미묘한 향기가 나고/ 꽃잎은 부드러우면서도 튼튼하지요.
-이부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중에서.
**으로 표시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런 뱃장이 내게는 없다.
최영미라는 시인의 ‘컴퓨터와 *를 하고 싶다’라는 직설적 시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이부 엔슬러나 최영미 시인의 원초적 본능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관능 뒤에 숨어 있는 생식을, 그 거룩한 윤회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수태를 위하여 연지 곤지 찍고, 짙은 향기로 꿀벌이며 나비들을 유혹하는 꽃의 발칙한 도발.
깊숙이 꿀을 숨겨 놓고, 사냥꾼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끌어내는 어미로서 꽃을 생각한다.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지혜의 꽃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부지런한 벌 한 마리가 동백꽃을 기웃거린다.
3. 벌 혹은 벌래
벌은 다른 말로 벌레라고도 부른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아니, 틀린 말이다. 벌레만도 못한 것이 인간일 수도 있다.
기원 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그리스의 수학자 파푸스라는 사람이 인간보다 벌이 훌륭하다고 말한 인간이다. 그가 쓴 수학집성數學集成)이라는 글에 '꿀벌의 집에 관한 이야기' 라는 대목이 있다.
"꿀벌은 천국으로부터 꿀이라는 신들의 음식 일부를 얻어서 인류에게 날라다 준다. 이처럼 귀한 꿀을 저장하기에 알맞은 집을 벌들은 만들었다. 이 그릇은 불순물이 끼지 못하도록, 서로 빈틈없이 연이어 있는 형태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동일한 점을 둘러싼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의 세 가지 밖에는 없다. 꿀벌들은 본능적으로 최대의 각(꼭지점)을 가진 정육각형을 택했지만, 이 형태는 다른 둘보다 훨씬 많은 꿀을 채울 수가 있다."
벌이 꿀을 저장하면서 살아가는 벌집을 살펴보면 정육각형이다. 왜 하필이면 정육각형의 도형을 선택하였을까?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수사를 뒤로하더라도 벌집 흉내를 낸 것이 첨단 기술의 집합인 비행기 날개 제조법이다. 그만큼 구조학적으로 안전하고 표면적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발 더 나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유기적, 사회적 형태를 엿 볼 수도 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전 생겨 난 이런 곤충들의 지혜를 벌레라고 무시 할 것인가.
비긋기를 기다리는 동백꽃 그늘에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회적 생활을 하는 지혜로운 벌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식물이다. 꽃이다. 바삐 날개 짓을 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곤충을, 제 멋대로 부려먹는 식물은 또 뭔가. 한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으면서도 온갖 곤충들을 이용해 수태를 하는 꽃. 혹은 나무들.
하잘 것 없이 보이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하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 눈으로 본다.
마치, 사람이 근친결혼을 회피하는 것처럼 꽃들도 자신의 꽃가루로 수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건, 코넬 대학의 June Nasrallah 박사의 말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불리한 열성유전자가 짝지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근친교배는 유해한 것이다. 그걸 풀어 낸 인간의 짧은 표현은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향기로, 색으로, 꿀로 유혹하는 방법을 써서 한자리에 있으면서 근친교배를 피하는 꽃의 지혜. 식물의 슬기. 무섭다.
그렇게 식물들이 꽃을 한철 피워 바라는 것이 수태受胎다. 임신이 되면, 식물은 미련 없이 아름다운 꽃잎을 떨군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의 비밀이다. 그 결과치가 열매고 다른 말로 새끼다. 끝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사실적 윤회다. 누가 감히 식물을 열등하다고 말하는가. 어느 현자 있어 식물은 감성이 없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가.
4. 세 가지 바다
어자피 산행은 일행이 많거나 적거나 홀로다.
손잡고 걸어가기에는 가파른 길이기에 혼자다. 그런 산은 생각 할 시간을 준다. 그런 쓸데없는 상념 속에 다리품을 판다. 눈 깊은 길을 헤쳐 가다 보니 끝이 있었고 성인봉 정상에 이르렀다. 갑자기 정상을 오르겠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꼭 정상에 올라야 된다는 절박한 이유가 없는 바에 사, 그냥 정상을 바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일행들이 빨리 올라와 증명사진을 찍자고 재촉한다. 애써 사양했다. ‘성인’의 정수리를 어찌 감히 중생이 밟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손사래를 쳤다. 정작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리라.
다시 한 번 배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한 사흘 죽치며 생각을 다듬을 것이다. 정상을 오르면 다시 온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희석 될 소지가 많다. 정상을 미련처럼 남겨 둘 이유가 거기 있다.
가파른 울릉 산이 갖기엔 거짓말 같은 너른 나리분지로 내려 온 후, 토종 산나물에 동동주로 하산 주를 마셨다. 나리분지는 여린 초록빛 세상이었다. 알 수 없는 세상 속이었다. 자꾸 마셔도 그래도 알 수 없는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뱃길은 고요한 바다 덕에 멀미도 없었다. 배 안에서 문경 땅 악우岳友 김규천씨와 마주 앉았다. 이미 그는 반쯤 취한 상태였다. 그 역시 채워도 목마른 그 무엇 때문이었을까. 씻지도 않은 울릉도 산나물을 안주로 그와 맑은 소주를 나눴다.
4월, 울릉산은 세 가지 바다가 있다.
성인봉이 허리를 담고 시시각각, 초록으로, 연두 빛으로, 급기야 검푸름으로 변하는 질펀한 동해바다가 첫 번째다. 또 하나는 경외 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역사役事를 보고, 더듬으며 한 생각에 빠지는 상념의 바다이다. 마지막은 무슨 바다일까. 윤회를 거듭했고 하고 있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앙증맞은 연초록 빛 수상한 숲바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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