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웃네요

2007.03.12 16:35

정찬열 조회 수:58

                                  
  봄이다. 봄 볕 아래 햇병아리가 잔 솜털을 세우며 종종걸음으로 어미닭을 쫒아 내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암탉은 계란을 품어 병아리를 깨지만, 암탉이 모른 사이에 오리알을 넣어두면 오리를 깨기도 한다. 이를테면 암탉은 오리의 ‘대리모’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막 깬 새끼오리가 뒤뚱뒤뚱 암탉을 따라다니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뻐꾸기도 오리처럼 제 알을 다른 새가 품게 하여 종족을 번식한다. 오리야 사람이 어미닭을 골라 알을 품게 하지만 뻐꾸기는 스스로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엄마 뻐꾸기의 산란기가 되면 아빠 뻐꾸기는 제 새끼를 탄생시켜줄 대리모를 찾아 나선다. 자기 알을 잘 품어 틀림없이 새끼를 깨 주어야 하고, 어린 뻐꾸기가 날개짓을 할 때까지 잘 돌보아 키워 줄 수 있는 새를 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새끼가 걸음마를 할 때쯤 제 새끼를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는 만만한 놈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보다 작고 힘이 약한 새를 대리모로 고른다.  
  뻐꾸기의 대리모는 뱁새다. 뱁새가 위에 언급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뱁새는 몸집이 뻐꾸기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새끼를 잘 깨서 웬만큼 키워 낼 수만 있다면 데려오는데 문제가 없을 것임은 물어보나 마나 한 일.
  엄마 뻐꾸기는 며칠이고 뱁새 집을 맴돌다가 뱁새가 잠시 집을 비운사이에 얼른 들어가 몰래 알을 낳는다. 이때부터 엄마 뻐꾸기의 걱정은 시작된다. 행여 뱁새가 눈치 채고 내 알을 버리지나 않을까. 내 새끼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등.
  그러나 무엇보다 엄마 뻐꾸기를 슬프게 하는 것은 다른 새처럼 내 알을 내가 품어 새끼를 깰 수 없다는 사실이다. 뻐꾸기는 서럽다. 뱁새 품에 있을 막 깬 새끼가 보고 싶어 가슴이 탄다. 그래서 피를 토하며 운다. 뻐꾹, 뻑-뻐꾹. 6월의 푸르름 속에 울려 퍼지는 뻐꾸기의 절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후빈다.
  둥지로 돌아온 뱁새는 뻐꾸기 알을 제 알인 줄 알고 품는다. 부화한 새끼 뻐꾸기의 먹이를 구해오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뱁새의 보살핌 속에 어린 새는 어느 새 어미 뱁새의 크기를 능가한다.  
  죽을 둥 살둥 힘들게 새끼를 키워놓았더니 어느 날 진짜 어미 뻐꾸기가 나타난다. 제 새끼라고 데려 가는데, 뱁새가 무슨 힘이 있어 막을 것인가. 새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지러지게 울지만 그 뿐. 다시는 속지 않는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 또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뱁새를 동정하는 인간들은 뻐꾸기를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 이곳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토마스. 캐런 김씨 부부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은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불임 부부인 김씨 부부가 인도의 한 불임 클리닉을 통해 대리모 시술로 건강한 사내아이를 얻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시술이 7만여 달러에 이를 뿐 아니라 까다로운 법적 제한이 있다.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1만여 달러로 합법적인 시술을 할 수 있는 인도를 택해 아이들 갖게 되었다고 부부는 설명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김씨부부와 아들이 중병에 걸려 치료비가 필요해 대리모를 자원한 인도의 어머니 모두에게 “윈-윈 하게 된” 좋은 선례라고 병원측은 평가한다. 대리모가 불임부부를 위한 희망의 상징인가, 아니면 도덕적 불감증이 낳은 세태를 반영한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그러나 불임부부에게 희소식인 것만은 틀림없을 성 싶다.    
  암탉을 엄마인줄 알고 뒤뚱거리며 따라가는 새끼오리들을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대리모를 이용해 핏줄을 이어가는 일이 오리나 뻐꾸기에 한정될 일이 아니다. 종족보존의 본능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뻐꾸기가 인간을 보고 웃을 차례인 것 같다.   <2007년 3월 14일 광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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